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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제10기 1챕터의 승부 원고 접수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업로드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가 행해집니다.
 
내 오른팔이 되어랏!글 이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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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복수 끝, 복수 시작
14-11-30 23:02
 
 
소년은 블레이져 품속에 숨겨둔 컴벳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놈은 매일같이 오후 다섯 시에 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도피오 한 잔을 주문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일까. 각설탕은 반드시 두 개. 스푼으로 다섯 번 휘젖고 세 모금으로 한 잔을 끝낸다. 그 뒤 테블릿 PC로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며 삼십 분 동안 여유를 즐긴다. 간간히 라임을 넣은 생수로 목을 축이면서. 소년이 알고 있는한 놈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과를 보냈다.
분명 소년의 부모를 암살하기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뭐 해. 아직도 겁이 나는 거야?
시끄러.
소년과 마주 앉아있던 가무잡잡한 피부의 소녀가 이죽거렸다. 매끈한 목덜미가 보이는 짧은 단발. 화가가 콩테로 그린 듯한 길고 섬세한 눈썹. 커다랗고 또렷한 눈은 파르스름한 빛을 띄고 있었다. 마치 먼 이국땅에서 건너온 고양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소녀였다. 카페에 있는 손님들은 너나할 것 없이 힐긋거리며 소녀의 모습을 훔쳐봤다. 하지만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그 미모 때문 만은 아니었다.
꽃잎이 한 장 뜯긴 장미처럼, 소녀는 외팔이었다.
어떤 불행한 사고가 있었을까. 왼쪽 팔꿈치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초콜릿빛 팔뚝부터 팔꿈치까지 미이라마냥 흰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자신의 장애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붕대에 감긴 팔을 팔걸이에 턱 하고 올려놓은 채, 태연하게 도자기 그릇에 담긴 티라미스를 파먹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노려보며 불만스럽다는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너 때문에 너무 눈에 띄잖아.
, 어차피 시계가 멈추면 우리가 왔다는 것 조차 인식 못 해. 이래서 우민은 .
한 쪽 손으로 무언가를 먹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소녀는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다 티라미슈 조각을 옷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잠시 멍하게 옷에 뭍은 티라미슈를 보다가 소년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이봐. 어서 닦아.
내가 왜!
소녀는 소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에 치켜뜬 눈매, 앙다문 턱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소년은 소녀의 눈길을 눈치채고 한껏 강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소년의 곱상한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앳티가 남아 있었다. 소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 너 말이야. 네 위치를 알고 있기나 한 거야?
젠장. 내가 왜 이런 일을..
소년은 투덜거렸지만 순순히 넵킨으로 소녀의 옷에 뭇은 얼룩을 닦았다. 열심히 얼룩을 닦는 소년을 내려다보면서 소녀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좋아. 앞으로도 이 몸 앞에서는 그렇게 고개를 숙이도록 해.
뭐라는 거야. 어차피 이 일이 끝나고 나서 앞으로는 내게 없어. 그게 약속이었잖아.
, 그렇군.
자기가 한 약속은 적어도 기억해주라고.
약속. 소녀가 조용히 읊조렸다.
바로 그 약속이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것은 일종의 계약이었다. 소녀와 소년은 여기에 오기 앞서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 받기로 합의했다.
소년이 소녀의 옷에 뭍은 얼룩을 모두 닦아내고 제자리에 앉았다.
. 그럼 이제 시작하지.
. 마침 태양이 가장 높이 떴어. 부족함이 없네.
소녀가 파우치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모래시계를 꺼냈다. 그리고는 예민한 애완동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잘잤니, 와흐다툰(고독).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소년은 그 모래시계가 기묘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마치 칼날이 두 개 달린 단검과도 같은 모양이었다. 구리인지 놋쇠인지 분간하기 힘든 마름모꼴의 몸체 양끝에는 칼날이 돋아나 있고, 속이 비치는 내부는 모래 한 톨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모래시계에 가장 중요한 모래가 없다니. 시계의 역할을 못하는 이상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어 보였다.
손을.
소녀가 엄숙한 목소리로 명했다. 상념이 깨지듯 움찔하며 소년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모래시계의 칼날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년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
당연하겠지만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주변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소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모래시계가 소년의 피를 빨아들이더니 그 안에 푸른 모래가 고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년의 손바닥 상처도 사라져 있었다.
엄살 그만 피워.
안피웠거든? 진짜 아프거든 그거?
소녀가 피식 웃는다.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 소년은 발끈했지만 머리를 내저었다. 집중하자. 드디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으니까.
가봐 어서. 피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알고 있어."
"잊지마, 네 피는 내 피이기도 해. 함부로 흘리면 아까운 일이야."
"알고 있다니까. 시간은 오 분이라고? 삼 분이면 충분해."
사파이어를 빻아 만든 듯한 새파란 모래는 아래를 향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소년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품 속에 숨겨둔 컴뱃 나이프를 꺼내 들고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놀랍게도 남자는 시간이 멈춰져 있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멈춰진 세상에 동요하여 칼을 든 채 다가오는 소년과 멈춰진 자기 주변을 번갈아 두리번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그 남자 앞에 섰다.
안녕. 내 이름은 유지야. 너는 내 부모님을 살해 했어. 죽을 준비나 하시지.
?!
대답 대신 나이프가 공기를 갈랐다. 수백번 수천번 반복했던 동작이다. 그리고 이 남자를 죽이는 상상 또한 그만큼 해왔다.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젖히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움직임이 재빠른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공격을 피하자마자 유지를 발로 밀어내며 의자에서 얼른 일어섰다.
새파란 꼬맹이 새끼가!
그러나 완벽하게 공격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의 볼에 길게 생긴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새파란 꼬맹이가 네 목을 따버릴 거야.
유지가 독기 서린 말을 내뱉으며 나이프를 손 안에서 능숙하게 돌렸다. 침착하게. 상대도 프로다.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모래시계로 멈춘 시간은 단지 오 분. 그 오 분 안에 놈을 죽여야 이곳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벗어 날 수 있다.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 내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 거냐?
남자도 품에서 정글도를 꺼내 들었다. 대낮 카페에서 이런 흉악한 물건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니.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소년, 유지가 이를 비틀어 올리며 미소지었다.
알지. 잘 알고 말고!
유지는 사내의 목줄기를 향해 날쎄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공격은 짧고 빠르게. 어깨의 힘을 빼고 휘두른다. 한 발 내딛으며 찌르고 그대로 당겨서 손목. 손목 다음 팔꿈치, 다시 신장을 노려 수평으로 한 뼘.
공격, 공격, 다시 공격.
그날 일은 아직도 방금전처럼 선명했다.
장롱에 숨은 채 벌벌 떨던 그날의 나.
아빠도 엄마도 바닥에 쓰러진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바닥에 번지는 피웅덩이.
차디차게 식은 그날의 기억들.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을 베듯 유지의 공격은 거침없었다.
허나 번개 같은 공격을 남자는 연거푸 막아냈다. 소년이 쏟아낸 공격을 손목의 스냅으로 모조리 방어해냈다. 뿐만 아니라 간간히 날카로운 공격을 해왔다. 무거운 정글도에 어울리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소년은 때론 막고 때론 걷어내면서 악착같이 나이브를 휘둘렀다.
참격을 피하고 안면, 막힌 반동으로 다시 관자놀, 피하는 순간 엘보, 이어서 정권 페인트 이후 다시 허벅지.
손바닥으로 소나기를 다 막을 수는 없다. 사내의 방어는 훌륭했지만 유지의 공격은 집요했다. 가열찬 파상공격이 계속되면서 놈의 온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유지는 사내의 동작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공격하는 유지 자신도 지쳐갔지만, 여기서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좀 더 몰아부쳐서 반드시 놈을 쓰러뜨려야 했다.
'이길 수 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다시 한 번 유지의 컴뱃나이프가 사내의 몸통을 베고 지나갔다. 이제 사내는 상처투성이였다.
", 이익!"
비틀거리면서 연거푸 뒤로 물러서던 남자는 정글도를 마구 휘둘러서 유지를 물러서게 했다. 남아있는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맹렬한 연속공격이었다. 유지는 한발짝 물러나서 공격을 피한 다음 침착하게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꼴사납게 최후의 발악이라니. 그러지말고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글쎄, 그럴까?"
그 순간 사내는 갑자기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의 목을 정글도로 후려쳐버렸다! 당연히 자신에게 공격할 거라 생각했던 유지는 남자의 돌발행동에 당황해서 쳐다봤다. 여자의 목이 잘리고 상처로부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허나 그녀는 인식조차 못한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마시고 있는 상태로 멈춰있었다.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에 화가 난 유지가 고함쳤다.
"무슨 짓이야!"
남자의 입에 미소가 어렸다. 순간 정글도에서 기분나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그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점점 사라져갔다. 뿐만 아니라 지쳐있던 사내의 표정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옆에 이렇게 배터리들이 널렸으니 고마워서 어쩌지?"
비겁한 놈!
사내의 반격이 시작됬다. 고기를 써는 듯한 묵직한 공격이 연이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나이프는 빨랐지만 정글도는 무거웠다. 남자가 휘두를 때마다 정글도는 둔한 철색의 초승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달무리의 끝은 항상 소년의 급소를 향했다. 소년은 정신없이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한 번 막기 시작하자 손목이 시큰거린 탓에 제대로 반격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소년의 상태를 눈치 챘는지 남자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유지도 이를 악물고 더욱더 치열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몇 번의 공방 끝에 유지의 나이프가 사내의 허벅지에 깊숙히 박혔다. 사내는 억지로 잡아 빼고는 다친 다리를 들어 유지를 걷어차 날렸다.
"하핫, 자 다시 한 번 더!"
"그만해, 이 미친놈아!"
이번엔 빙수를 먹고 있던 아저씨였다. 사내의 정글도가 그대로 정수리에 떨어졌다. 또다시 정글도에서 붉은 빛이 뿜어지며 사내의 상처가 사라졌다.
사내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멈춰있는 주변 사람을 죽여서 힘과 체력을 회복했다. 처음에는 유지가 우세했지만, 싸움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숨쉴 틈도 없이 2분이 흘렀다. 유지의 숨이 가빠졌다.
"..."
"벌써 지친거야? ?"
약이 오른 소년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면서 나이프를 깊숙히 찔렀다. 허나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슬쩍 비켜섰다. 무리하게 찌른 나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사내가 정글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혀를 찼다.
"이래서 애들은..."
유지가 이를 갈며 달려들었다. 도발 당한 유지는 그만 보기 좋게 남자의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다. 남자는 상체를 뒤로 스웨이 하는 요령으로 공격을 피하고 무릎으로 유지의 배를 올려 쳐버렸다. 묵직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유지는 견뎌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만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뜨린 채 주저앉고 말았다.
, 기억났어. 너 그 놈이구나. 박의사 아들래미. , 여기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네.
남자가 유지의 머리를 싸커킥으로 걷어 차버렸다. 입안이 비릿한 피맛으로 가득하다. 얼굴 전체가 얼얼한게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지만 정신이 몽롱해졌다.
으윽…”
그래서 뭐라고 했지?
쓰러진 소년을 향해, 사내는 정글도를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겁에 질리고도 남았겠지만, 유지는 쓰러져 있음에도 사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죽여버리겠어..."
힘이 빠진 탓에 유지의 목소리는 들릴락말락했다.
", 뭐라고?"
사내는 손바닥을 귓가에 대고 귀를 기울이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이 기분나쁜 웃음이다. 배고픈 야수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그런 잔인한 즐거움이 엿보이는 미소였다. 다 끝났으니 좀 더 괴롭히다가 죽이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 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소녀가 모래 시계를 유지에게 던졌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모래시계가 천천히 자신에게 날아왔다.
잡아. 유지!
소녀의 목소리. 정신이 번쩍 든다. 유지는 팔을 뻗어 공중의 모래시계를 낚아챘다. 그리고 모래시계가 유지의 손에 들어온 순간, 잘록한 유리관 안에 담긴 모래가 눈부신 푸른 섬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뭐얏!?"
깜짝 놀란 사내가 유지의 목을 노리고 정글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사내가 휘두른 정글도는 유지의 목에 닿지 못했다. 유지가 마치 유령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당황한 사내의 입에서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 으힉!?"
모래시계는 방금 전의 눈부신 섬광 대신 조용히 푸른빛으로 깜박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꽉 쥐자 손바닥에 꼭 맞았다. 유지는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 모래시계가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유지의 눈에 비친 사내는 하품이 날 정도로 느려져 있었다. 아니, 느려진 것은 사내 뿐만이 아니었다. 모래시계를 던져준 다음 노곤한듯 하품하는 소녀의 얼굴 또한 너무나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세상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아니, 유지가 그만큼 빨라진 것이다. 모래시계의 마력에 의해 무섭도록 가속화된 유지는 휘둘러진 정글도를 쉽게 피하면서 사내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널 죽이겠다고 했어!
유지는 모래시계에 달린 칼날로 남자의 무릎을 그대로 내려 찍었다.
아윽!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유지는 증오에 찬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모래시계를 단검처럼 쥐고 사내를 향해 곧바로 덤벼들었다. 당황한 사내는 정글도를 들어올려 유지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법에 의해 가속화된 유지의 움직임은 잔상을 그릴 정도로 빨랐다. 마치 여러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수 십명으로 늘어난 유지는 손에든 수 십개의 모래시계를 휘둘러 순식간에 사내의 급소를 공격했다.
", 어허억?"
먼저 방어를 걷어내고 손목, 파고들면서 허벅지 뒤, 뒤로 돌면서 늑골 아래, 다시 목. 그리고 관자놀이!
수 천 번 연습하고 수 만 번 떠올렸던 동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끄으으으윽.
남자가 피를 뿜으며 뒤로 서서히 쓰러졌다. 이번에는 정글도의 마법조차 그를 구해주지 못했다.
모래시계의 시간은 이제 얼추 일 분.
"내가 말했지, 삼분이면 충분하다고."
"크읏 제기랄."
사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쓰러진 사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유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뭔가 잡고 있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손을 휘저어 어딘가에 기대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꼴사납게 넘어지겠어. 그러나 유지는 넘어지지 않았다. 소녀가 어느새 다가와 유지를 부축해 준 것이다.
알싸하면서도 향기로운, 어딘가 연몰약의 냄새와 닮은 그 향기에 취할 것 같았다. 유지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도와주지 말랬지.
멍청이. 나 아니었으면 너 죽었어.
알아.
솔직한 유지의 대답에 소녀는 핏 하고 웃었다. 저거 비웃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왠지 화가 나지 않았다. 유지는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카페 밖으로 걸어나갔다.
 
모래시계의 푸른 모래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카페에서 멀어지자 비명소리와 한바탕 소란이 들려왔다. , 이제는 더 이상 알 바 아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의 복수 겸 그들의 복수랄까. 나도 참 제멋대로 납득해버리는구나. 유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너. 어차피 내 팔로 돌아갈 거잖아. 그런데 왜 시간까지 멈추면서 복수하려 한 거야?
부모님이. 내 양부모님이 살면서 절대로 범죄는 저지르지 말라고 했거든.
“….그건 네가 복수하지 말아달라는 뜻 일걸?
나도 알아.
둘은 말 없이 걸었다. 어느 정도 카페와 멀어지자 공원이 나왔다. 유지는 소녀의 부축을 뿌리치고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 맘대로 해. 날 네 팔로 만들든지 말든지.
호오, 이제야 내 말을 믿나 보네?
천년 동안 미라가 되어 있다가 다시 부활해서 깨어나 보니 자신의 팔이 사라졌는데 그게 나라는 거? 아니면 네가 시간을 멈추는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 뭐 둘 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이미 하나는 실제로 일어났잖아. 나머지 헛소리 정도야 믿어주지. 게다가 아무래도 상관 없거든 지금은.
자포자기 하듯 유지가 대답했다. 그래. 거창하게 복수도 했겠다. 솔직히 공부 따위 신경 쓰지도 못해서 학교로 돌아 갈 수도 없다. 오직 복수만 준비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 하등 쓸모 없는 기술들만 잔뜩 익히고 말았다. 오히려 소녀 때문에 너무 일찍 일생의 목표를 이뤄버렸다.
소녀는 멍하니 하늘을 보는 소년을 말없이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 주스 마시고 싶다. 주스. 하나 사줘봐.
“….?
허어. 빨리 안 움직이냐?
뜬금없는 소녀의 부탁에 유지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동전을 꺼냈다. 팔백원. 자판기에서 캔 주스를 뽑아 소녀에게 건 냈다. 그러자 소녀는 새침하게 눈을 감더니 고개를 저었다.
.
팔이 없었지. 유지는 캔의 뚜껑을 따고 다시 건넸다.
먹여줘.
! 내가 왜..!
아무래도 상관 없다며.
…”
주스 캔을 기울이자 소녀가 꼴깍꼴깍 하며 주스를 마셨다. 마실 때마다 움직이는 목줄기가 왠지 사랑스러웠다. 장난기가 발동한 유지가 계속해서 주스를 기울였다. 숨이 찬 소녀는 결국 다 마시지 못하고 푸핫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잠시 켈록거리던 소녀는 찌릿, 유지를 노려보며 정강이를 걷어 찼다.
! 왜 때려!
당연한 응징이야. 이 건방진 오른팔!
소녀의 입가에서 쥬스가 방울져 떨어졌다. 한 손으로 입가를 스윽 닦고는, 소녀는 혀를 내밀며 캔을 낚아챘다.
, 그래도 제법 나쁘지는 않네. 결정했어.
뭐가?
내 이름은 세셰트. 영광으로 여겨. 이제 너의 주인님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날 네 팔로 만드는거 아니었어?
세셰트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역시 널 사람인 채로 부리는게 더 나을 거 같거든.
?
유지가 뭐라고 대꾸하려고 했지만 세셰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돌아서 걸어갔다. 앞으로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천 년 만의 첫 출발이 제법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작가의 말 : 까만 피부 소녀가 좋아요. 부드러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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