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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제10기 1챕터의 승부 원고 접수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업로드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가 행해집니다.
 
너와 나의 피핑 톰글 트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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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챕터
14-11-30 22:38
 
 

 

1

 

 교탁 앞에 선 그는 후후 웃으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제군들. 그가 말했다.

 “기다리던 자리 바꾸기 시간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의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성을 지르, 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도리어 시큰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뭐야? 왜 이렇게 텐션들이 낮아?”

 그가 묻자 중간 자리에 앉아있는 한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물어봤자……. 어차피 고작 자리 바꾸기라고? 우리가 뭐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그런 걸로 들뜰 리가 없잖아.”

 턱을 괸 채 심드렁히 답한 소년의 말에 뜨끔, 하고 놀란 여자아이들 몇 명이 있다는 사실을 이 소년이 알 리 없었다.

 허나 시야가 훤한 교탁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들뜰 리가 없다고? , 미소 지은 그의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말 잘했다. 그렇다면 들뜨게 해주지……!”

 그는 교탁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쳤다. 공정한 제비뽑기? 집어치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법!”

 선언했다.

 “자리 뽑기가 아냐! 자리 뺏기다! 그래. 자리 쟁탈전, ‘배틀 로얄이다!”

 배, 배틀 로얄……?! 하는,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사실 놀랐다기보다는 다들 지금 쟤가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라는 반응에 가까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연설을 이어갔다.

 “인간은 예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오던 종족이었어. 그렇기에 인간은 여기까지 진화해올 수 있었던 거다.”

 그가 외쳤다. ,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자 본질!

 “그런데 너희들이 한 달간 앉을 자리, 함께 앉을 짝꿍을 정하는 건 순전히 운에만 맡긴다고? 어림없는 소리! 제군들은 정녕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자 권능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해버릴 생각인가!”

 그리고는 교탁 옆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작은 통을 집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올렸다.

 “룰은 간단하다. 지금부터 제군들에게 이 통 안에 든 제비를 하나씩 나눠줄 것이다. 그럼 제군들은 거기다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하나씩 적으면 된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게임을 결정, 그 게임에서 승리한 상위권들에게 원하는 자리를 부여하는 거지. 이해했나?”

 뭔가 재밌을 것 같지 않냐? 따위의 중얼거림들이 수군수군 나오기 시작한 이 분위기에 그는 마지막으로 힘을 준 이 한 마디로 결정타를 날렸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이것저것하기 쉬운 뒷자리건, 신경 쓰이는 애의 옆자리건! 원한다면 직접 쟁취해가라!”

 그 결과,

 뭐, 뭔가 갑자기 흥이 오르는데?!

 사스가 흥행의 신!

 축제의 전설!

 오오, 캡틴! 마이 캡틴!

 프로듀서!

 잠깐, 방금 그건 어떤 씹덕이냐?!

 알아듣는 너도 씹덕이야!

 영 시들하던 2학년 5반 일동은 보시다시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뜩 들썽대는 모습들을 보였다.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낀 것 같지만. 아무튼. 그 와중 제일 먼저 딴죽을 걸었던 소년만은 진짜냐고…….” 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괜찮죠, 가을 쌤?”

 연설을 마친 그가 묻자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던, 그들의 담임으로 보이는 가을은 귀찮은지 보고 있는 책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대신 늘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맘대로 해.”

 “좋아, 그럼 결정!”

 “오오!”

 이번에는 정말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만족스러워하며 각 분단의 앞자리에 인원수에 맞춰 종이들을 나눠주었다.

 잠시 후, 모두가 작성을 마쳐 다시 종이들을 회수할 차례가 됐을 때였다.

 “그럼 1,2분단은 내가 걷을게. 지우가 3,4분단 것들 좀 걷어줘.”

 “? 내가 왜?”

 여전히 시큰둥함을 유지하던 지우는 갑작스런 그의 요청에 의아해하며 따졌다. 하지만 그는 그저 생긋 웃기만 했다. 작게 한숨을 쉰 지우는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들을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걷은 종이들은 모두 원래 있던 작은 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통의 입구를 막고 좌우로 몇 번 흔든 뒤 입구를 막았던 손을 떼고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 뽑는다!”

 그리고 피 말리는 자리 쟁탈전, 이름하야 1회 배틀 로얄의 개시를 알렸다.

 그는 서서히 통 안을 향해 손을 뻗었고 지우는 팔짱을 낀 채 그의 옆에 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첫 번째 게임은? 두구두구두구.”

 그는 관중을 다루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입으로 북소리를 내며 감질나게 구는 것도 잠시. 그는 제비 하나를 힘차게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접힌 부분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은근 긴장되는데? 라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무엇보다도 어울리는 지금의 이 상황 속에서 선정된 첫 번째 게임은 바로,

 “왕게임! ……? 왕게임?”

 왕게임이었다.

 그는 제비를 들어 올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이딴 걸 적어놓은 거야?”

 지우는 고개를 떨구고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서른여섯 명 중에서 왕을 뽑자고? 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제정신이냐며, 이 제비를 써냈을 누군가를 추궁했다.

 직접 제비를 뽑은 그 역시 이건 예상 못했다는 듯 벙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우와 대책을 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이 낸 답은 각자에게 무작위로 번호를 나눠주고 컴퓨터로 그 번호를 뽑자는 것이었다. 지우는 이런 답 없는 제비를 써낸 누군가를 저주하며 그와 함께 하나씩 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사람만으론 시간이 지체될 거라 생각했는지 가을은 서기에게 그 둘을 돕게 했다. 서기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어봤지만 애초에 아까부터 쭉 책만 바라보고 있는 상대에겐 소용없는 일이었다.

 “뭐랄까, 미안…….”

 “……네가 적은 게 아니라면 됐어.”

 지우는 왠지 모를 미안함에 사과를 하고 말았고 서기는 됐다며 이미 다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간의 작업을 마친 세 사람은 새로 만든 제비를 모두에게 뽑아가게 했고 분배가 완료되자 그는 다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럼 뽑는다?! 그가 외치자 전원의 시선이 교실 앞 모니터를 향했다.

 “, 왕은 누구냐!”

 누가 컴퓨터 아니랄까봐, 그가 추첨 버튼을 누르자 일말의 긴장감도 없이 곧바로 숫자가 나타났다.

 “27!”

 “나다!”

 신나하며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은 구석 창가 자리에 앉은 한 소녀,

 “당신은 선생이잖아!”

 가 아니었다. 지우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 저는 잠을 자기 편한 맨 뒷자리를 희망합니다. 아니, 그보다 집에 가고 싶어.”

 “일할 생각 전혀 없구만! 게다가 언제 거기로 간 거야?!”

 “아아, 결석자 때문에 자리가 남아있어서 말이지. 무심코.”

 가을은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서 빌린 블레이저를 책상 위에 걸어둔 정장 자켓 대신 걸치고 있었다.

 “무심코가 아니잖아!”

 무심코 태클을 걸고 말았다.

 자신도 수업시간에 자고 싶다며 떼를 쓰는 가을은 정말로 영락없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학생은커녕 성인들도 가지기 힘든 그 글래머러스한 몸매만 제쳐둔다면 말이죠. 흐흐.”

 “. 너 말로 하고 있어.”

 “.”

 지우와 서기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한심해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허나 정작 가을 본인은 듣지 못한 건지 별 반응이 없었다.

 서기가 이런 녀석과는 같이 서있기도 싫다는 투로 혀를 차고 자리로 돌아간 뒤, 남은 두 사람은 자신의 동안 미모를 한껏 활용하며 교사 2년차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가을을 무시하고 다시 왕을 뽑기로 했다.

 “, 누구냐 왕.”

 “15……, 나다!”

 손을 든 건 바로 앞자리의 남학생이었다. 그는 기대에 부푼 얼굴로 교실 안을 쓱 훑어보았다.

 “그래. 원하는 자리가 어디야?”

 “? 시키는 게 아냐?!”

 남학생은 경악했다.

 “애초에 자리 정하려고 하는 건데 뭘 시켜 인마.”

 옆에 있던 그 역시 경악했다.

 “, 시키는 게 아니었어?!”

 “넌 또 왜 놀라는데?!”

 뭘 시킬 생각이었던 거야……. 라거나, 변태들이……. 같은, 질려하는 여자들의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그 소리들을 들은 지우는 새삼 여자들의 무서움을 실감하며 그 타겟 중 하나인 남학생에게 얼른 명령이나 내리라 재촉했다.

 “그럼 4분단 맨 뒷자리로…….”

 “됐고, 번호나 말해. 그 번호 가지고 있는 애 자리에 앉는 거니까.”

 “심지어 내가 고르는 것도 아냐? 무작위?!”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그 나라는 필히 망해. 역사 시간에 졸았냐.”

 “뭔 개소리야! 왕 졸라 쓸모없어!”

 “됐으니까 얼른 번호나 골라.”

 남학생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따지진 않았다. 얼른 고르기나 해, 변태. 라는, 왠지 모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 7, 7?”

 “오케이 7. 7번 누구야?”

 그리고 옆자리의 짝꿍이 손을 들었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자들 중 누군가는 벌을 받은 것이라 말했다. 남자들 중 누군가는 3cm 리콜이라느니 그런 아는 사람만 아는 소리들을 해댔다.

 “이게 뭐야…….”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된 남학생은 고개를 푹 숙여 두 손에 파묻은 채 남몰래 글썽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후, 지우와 유진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역시 왕게임은 좀 아닌 거 같다.”

 “그러게.”

 “!”

 남학생이 소리쳤다.

 안 그래도 답이 없는 데에다 웬 왕권반대자의 입김까지 더해져 더 답이 없어진 왕게임은 그렇게 한 명의 피해자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예기치 못한 폭소 덕분에 분위기는 한창 고조되어 있었다. 유진은 분위기를 더 띄울 필요는 없다고 느꼈는지 곧장 두 번째 게임의 추첨에 들어갔다.

 “두 번째 게임! 두구두구두구.”

 유진은 마치 이 한 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버릇처럼 외쳐대는 (자신의 모든 것, 실은 아무것도 아닌 거 아냐? 그렇게 만날 걸어도 돼?) 듀얼리스트와 같이 제비를 뽑았다.

 “닭싸움!”

 “니들 진짜 제대로 할 생각 없지?!”

 지우의 목청은 쉴 틈이 없었다.

 가을은 뒷자리를 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무시하자 삐졌는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교실 안에서 닭싸움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의견을 모은 결과, 닭싸움은 누가 더 닭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는지라는, 어찌 보면 더 정신 나간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남녀공학에서 그딴 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더군다나 아직은 학기 초. 한 달 정도의 시간은 어느 정도의 어색함을 풀어주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친해지지는 않은 단계. 그러니 누구라도 상관없이 넉살좋게 구는 유진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다들 한창 이미지를 관리할 시기였다. 예상대로 자신의 차례가 오면 기권을 하거나 아니면 대충 꼬끼오, 하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게 태반이었다.

 아니면, 아예 대놓고 웃기려는 놈도 있었다.

 치킨! 치킨! , , ! 치킨치킨! 치키이이인!

 이런 식으로.

 지우는 질색했다. , 저 미친놈.

 “얼마나 뒷자리가 앉고 싶은 거야……?”

 가장 치킨처럼 운, 노력이 가상한 그 남학생 한 명을 포함하여 자리선택권을 받을 상위권 다섯 명은 투표할 필요도 없이 뽑아낼 수 있었다.

 그중 무언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일등은 썸머라는 여자아이였다.

 구릿빛 피부에 밝게 빛나는 짧은 금발, 혼혈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매력적인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그런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정말 열심히 닭 울음소리를 냈는데, 글쎄, 웃어야할지 감탄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실감나는 소리를 냈다. 여기가 농어촌 학교는 아니지만 쟤는 꼭 농어촌 전형에 넣어줘야 한다고, 그야말로 시골 그 자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허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마 분명 모르겠지만, 썸머는 일등을 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다.

 “야호!”

 보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질 정도로 해맑은 미소였다.

 “, 그럼 닭……, 이 아니지. 썸머? 어디 앉을래?”

 유진의 물음에 썸머는 기운차게 답했다.

 “! 저는 지우 옆에 앉겠습니다!”

 선포했다, 라는 게 더 맞으려나.

 그 여파로 인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여자 그룹은 어머어머, 거리며 좋은 수다 거리를 찾았다고 까르륵댔다. 흠칫 놀란 여자아이 한 명에 순간적으로 눈썹을 찌푸린 여자 한 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반면 남자들의 리액션은 한결 같았다. 여기저기서 분해하는, 부러워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대표적인 하나를 꼽아보자면 왜 저녀석이냐고오오……!” 정도이려나. 포켓몬이냐……! 나도 포켓몬 마스터가 되면 저렇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거냐! 라는 건 분명 동떨어져있긴 했지만. 사족을 하나 달아보자면, 꿈 깨. 포켓몬이고 뭐고 일단 잘생기면 돼. , 하여튼. 아무리 닭소리를 잘 냈다고 한들 미소녀는 미소녀다. 미소녀는 언제나 옳다.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정의는 미소녀일 것이다, 라 생각하는 이 나이 때쯤의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굳이 예외를 꼽자면 고개를 돌린 채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유진이나 정작 지목당해 놓고서 .” 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지우 본인 정도?

 그때였다.

 “, 안 돼 그런 건……!”

 흠칫 놀랐던 여자아이, 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놓고선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우발적인 행동이었으리라.

 구경꾼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옮겨졌다. 뭐야, 뭐야 이 상황? 앞으로 몇 십 년 정도가 지나면 국내 아침드라마 산업을 책임져줄 여편네들은 연이어 터지는 가십거리에 눈을 반짝였다. 남자들은 뭐, 질투 반 흥미 반.

 썸머는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일등이니까 누구 옆에 앉든 내 맘이잖아? 내가 지우 옆에 앉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 행동과 물음엔 다른 뜻은 없었다.

 “아니면, 혹시 봄이 너도 지우 옆에 앉고 싶은 거야?”

 그저 순수한 의문이었다.

 허나 누군가의 순수함은 누군가의 데미지가 되는 법. 그래서 순수純粹인 것이다. 순수할 순. 부술 쇄. 순수우유케이크처럼 말이다. X리바게뜨 씨발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봄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리며 물결을 연상시키는 긴 갈색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려댔다.

 “그럼 왜?”

 “그러니까……, , 그래! , 지우가 곤란해 하잖아?”

 봄이의 말에 5반의 시선은 모두 지우에게 집중되었다. 실제로 그는 여자들의 뜬금없는 쟁탈전에 매우 곤란해 하는 중이었다. 그 안에 숨은 그녀들의 감정을 눈치 채고 있긴 한 건지는 둘째 치고 말이야.

 썸머는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내가 옆에 앉으면, 곤란해?”

 맑은 바다빛 눈동자를 초롱초롱 반짝이며.

 “, 아니 그게…….”

 지우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썸머는 화색이 되어 봄이에게 보란 듯 지우를 가리켰다.

 “안 곤란하지?! 봐봐, 아니잖아!”

 지우 옆에 앉을 거야! 그것은 일종의 승리선언이었다.

 “으으, , 안 되는데…….”

 안절부절못해하던 봄이는 유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백하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다. 이를 눈치 채고 키득 웃음을 흘린 유진은 어쩔 수 없네, 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 썸머 쨩. 지우 옆엔 못 앉아.”

 예기치 못한 복병의 등장에 놀라는 썸머.

 “? ?!”

 그녀를 위한 유진의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또 설득력이 있었다.

 “그야, 지우가 아직 자리를 안 골랐잖아.”

 “…….”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썸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곤 입을 쩍 벌렸다. 덤으로 봄이도. 아니, 사실 대다수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맞아! 아직 내가 어디 앉게 될지 모르잖아!”

 “, 그럼 나도 그냥 나중에 고를래!”

 썸머는 필사적으로 항변해보았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그러면 닭싸움을 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

 바보다. 바보가 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는 썸머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봄이를 비롯하여 한 서른 몇 명 정도의 바보들이 여기에 있었다.

 “, 시간 없다고? 어디 앉을 건지 얼른 정해.”

 “, 저 항국뫌 좔 몰읍니돠. 뭇슨 마를 하쉬는 건쥐 잘 모르겠슴돠.”

 “뜬금없는 외국인 행세?!”

 이제 와서 그래봤자 늦었다고 썸머 쨩.

 결국 썸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분해하며 자리를 골라야했고 지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나머지 네 사람이 모두 원하는 자리를 채우고 나서야 이어진 세 번째 게임 추첨에서, 유진은 귀경이라 적혀있는 제비를 뽑았다.

 “귀경……?”

 “뭐야 이게? 귀경길? 뭔 추석이냐?”

 두 사람의 의문에 답한 것은 가을이었다.

 “그건 아마 귀가경주의 줄임말로써 누가 더 빨리 귀가하는지를 대결을 하는 게임을 말하는 게 아닐까?”

 “, 그래요? 그런 건 어떻게 아신.”

 “내가 넣은 게임이니까!”

 “이봐, 선생!”

 “난 어차피 자리도 못 고르잖아. 집에 보내줘어.”

 “알았으니까 그냥 가!”

 지우는 그녀의 의견을 가차 없이 묵살하고 곧바로 다음 제비를 뽑았다. 그렇게 결정된 네 번째 게임은,

 “프로레슬…… , ! 정상적인 걸 넣으라고 정상적인 걸!”

 기각되었을 뿐더러 지우의 분노를 샀다.

 이번엔 제발 제대로 된 제비가 나오기를 바라며 통 안을 뒤적거린 지우가 뽑은 다섯 번째 제비는 가위바위보였다.

 “뭐랄까, 갑자기 무난하구만…….”

 “무난하긴 한데, …….”

 너무 무난하지 않아?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프로레슬링보단 낫다 프로레슬링보단.”

 지우의 신호에 맞춰 하나둘 손을 들어올렸다. 많은 인원을 고려해 그룹을 나눴고 차근차근 상위권들을 선별해갔다. 그야말로 무난한 종목에 어울리는 무난한 진행이었다. 그 후로도 웬일인지 가위바위보와 같은 평범한 게임들이 계속되었다. 딱히 이벤트라 부를만한 것들도 없었다. 시끌벅적했던 초반과 비교하면 정말 몰라볼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자리들을 채워갔다. 지우는 드디어 정상인들이 기뻐했지만, 유진은 이대로 간다면 아예 흥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고 그에 따른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여덟 번째 게임은! 그가 외쳤다.

 이때 본 제비의 이름을 그들은 아직 모른다.

 “빼빼로 게임!”

 하지만 분명 이것만은 아니었다. 왜냐면, 애초에 유진은 제비 안을 보지도 않았으니까. 혹자들은 이런 행위를 이렇게 명칭 한다. 주작, 이라고. 그리고 Pitbull은 이런 노래를 부른다. Tchu tcha tcha tchu tchu tcha.

 유진이 처방한 약은 시너와도 같았다. 그 한 마디에 다들 취한 사람마냥 소리를 질렀고 꺼져가던 불씨는 다시 피어올랐다.

 남은 인원은 일곱 명. 홀수였다.

 “흐응. 한 명이 모자라네~?”

 유진의 연기는 너무나도 어설펐다. 아니, 실은 좋았다고 해야겠지. 그야 일부러 티를 냈으니. 그는 남은 인원 중 한 명인 봄이에게 슬쩍 눈길을 주더니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찡긋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제안했다. 인원수가 모자라니 그들 사이에 한 명을 끼워 넣자고. 그리하여 이미 자리를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게임에 떠밀리게 된 불운(?)의 사나이는,

 “…….”

 물론 지우였다.

 “뭐 어때?”

 유진은 노골적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럼 네가 하면 되잖아.”

 “진짜? 괜찮겠어? 나는 빼빼로엔 별로 관심이 없는데~.”

 내가 노리는 건 입술뿐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선언한 유진은 음흉한 웃음과 함께 츄릅, 입맛을 다셨다.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유진의 주도 하에 8명은 작은 규모의 추첨을 통해 팀을 구성했다. 그로 인해 한 쌍 씩의 남남, 여여라는 안쓰러운 조합들이 탄생하고 말았다. 남녀 조합은 볼 수 없는 건가! 하고 관객들이 안타까워하던 찰나였다. 1팀의 탄생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모자라 환호성마저 이끌어냈다. 지우와 봄이의 조합이었다. 그러자 , 잠깐! 그런 거라면 내가!” 혹은, “저 자식, 죽여 버릴 거야……!” 같은,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질투와 반발들이 쏟아졌지만,

 “, 지우랑 빼빼로게임……. 지우랑 빼빼로 게임……!”

 지우의 상대, 봄이는 잔뜩 빨개진 볼을 두 손으로 감싸 가리기에 바빴다. 근데 가려질 리가 있나. 손부터가 빨간데. 꼭 물든 것 같이 보였다. 아니, 그보단 우아아…….” 거리는 것부터 어떻게 해야 되지 않았을까.

 유진은 이럴 때를 위해 미리 매점에서 사뒀던 빼빼로를 꺼내들었다. 지우는 쓸데없이 준비성이 철저하다며 불평했다.

 “, 무리할 필요 없다고?”

 이렇게 말한 것은 지우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그런 배려가 오히려 봄이를 자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봄이는 각오가 섰다는 듯 불끈 쥔 두 주먹을 자신의 가슴 앞에 모았다.

 “, 민폐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

 “아니, 이런 걸 열심히 해봤자…….”

 지우는 당황했다.

 “, 그럼 1! 시작!”

 유진의 신호에 지우는 건네받았던 빼빼로를 입에 물었다. 후딱 끝내버리자.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한 주제에. 그런 그의 얼굴은 약간 붉어져있었다. 봄이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 조심스레 빼빼로의 끝을 물었다. 그리곤 야금야금 빼빼로의 길이를 줄여갔다. 그 모습은 상당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해서,

 오오.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화끈거려질 정도였다. 하물며 그 두 사람이라면 어땠겠는가. 특히 봄이에게선 김이 새어나오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였으니.

 오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구경꾼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다.

 오오오!

 어느새 서로의 속눈썹 개수마저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점점, 점점 더 다가갔다. 코가 맞닿을 뻔했다.

 멈칫한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때,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 두 사람도 잘 모를 것이다.

 먼저 용기를 낸 쪽은 봄이였다. 그녀는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젠 다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들은 모두 소리죽여 그 다음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과 입술은…….

 “그만해.”

 라는 가을의 한 마디에 멀찍이 떨어지고 말았다.

 아, ! 왜 그런 타이밍에! 여기저기서 탄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차피 썸머 또한 이미 둘 사이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어린 것들이 어디서 나도 못해본 걸 하려들고 있어.”

 가을은 가슴에 손을 얹고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는 지우 쪽을 곁눈질했다. 그러더니 한쪽 볼을 살짝 부풀리고 그 누구도 듣지 못하게끔, 작게 속삭였다.

 유진은 씩 웃었다.

 가을 쌤! 그럼 이번 기회에 저랑! 보세요, 여기 제 빼빼로가 있어요!”

 그는 가을에게 다가가며 빼빼로를 꺼내려 곽을 넣어둔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고,

 “성희롱이냐!”

 그대로 뻗어진 주먹에 배를 강타 당했다.

 단언컨대 유진에게 그렇고 그런 꿍꿍이는 없었다. 그냥, 좋지 않은 타이밍에 재수가 없었을 뿐.

 주최자이자 주동자의 뜬금없는 리타이어로 결국 남은 자리는 공정한 제비뽑기 절차를 거쳐 정해졌습니다.

 

* * *

 

 세 사람은 나란히 하굣길을 걷고 있었다.

 “귀엽다~.”

 봄이의 눈길을 끈 것은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생들의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겉모습에 속지 마. 원래 저런 것들이 더 무서워.”

 초딩이잖아. 지우는 덧붙였다.

 “쟤네, 화신초 애들인가 봐.”

 유진은 그들이 입은 체육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라, 정말. 그럼 우리 후배들이네? 봄이는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반가워했다. 그렇겠네. 유진은 깍지 낀 양손을 자신의 뒷머리에 가져다댔다.

 “옛날엔 우리도 저렇게 작았었는데.”

 “그러게~.”

 지우가 코웃음을 쳤다.

 “뭐 얼마나 나이를 먹었다고 벌써부터 그래?”

 “그래도, 우리가 이러고 다니는 것도 벌써 10년째라고? 초등학교에, 중학교에, 고등학교까지 전부 같이 다녔잖아.”

 유진의 말에 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게다가 이번엔 전부 같은 반이기까지 하고.”

 그러자 지우는 멀어져가는 초등학생 무리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벌써 10년이냐. 진짜 시간이 빠르긴 하구만.”

 “빠르지~.”

 “진짜 지긋지긋한 인연이네.”

 “그러네~.”

 봄이는 그립다는 듯 지우가 하는 말들에 맞장구를 쳤다.

 세 사람이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우리들 같은 경우도 요즘엔 흔치 않지.”

 유진은 이렇게 말하곤 손등으로 지우의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소중히 하라고. 지우는 대답 없이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봄이는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그런 친구들을 소중히 하는 의미에서. 유진은 길 앞쪽에 있는 슈퍼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먹을래? 내가 살게.”

 지우와 봄이는 동시에 입을 동그랗게 모아 오, 소리를 냈다.

 “웬일이냐. 네가 그런 말을 다.”

 “빼빼로.”

 “안 먹어!”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정말! 유진이 너!”

 한편 봄이는 볼을 부풀리더니 이내 시선을 내리깔고 카디건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심술쟁이. 그리고 토라진 듯 중얼거렸다.

 “아하하. 미안, 미안.”

 지우는 빠득 이를 갈았다. 봄이는 어쩌고 있나 궁금했던 걸까. 슬며시 옆을 바라보려다 그만 마침 딱 고개를 든 봄이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떠오른 홍조를 감추기 위해.

 “흐음? 으으음?”

 무슨 꿍꿍인지는 몰라도, 유진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지우와 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뭘 봐. 지우가 따지자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능청을 떨었다. 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를 외면하려 고개를 돌리던 찰나, 한 소녀의 모습이 지우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인형과도 같았다.

 “? 겨울이다.”

 자연스레 봄이의 시선 역시 그녀를 향했다.

 겨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우를 보게 되었다.

 아주 잠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차가운 시선만을 남긴 채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긴 칠흑빛의 머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얼굴 진짜 작다~.”

 봄이는 부럽다는 듯 감탄했다.

 “……, 우리 학교였지?”

 “. 바로 옆 반이야. ?”

 한동안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우는 , 그냥.” 이라 덤덤하게 답하고 다시 발걸음을 떼려했다. 유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뭐야, 혹시 관심 있는 거야?”

 지우는 그런 거 아냐, 라 대답했지만 유진은 들은 체 만 체 마치 흑막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그의 안경알이 번뜩인 것만 같았다. 유진은 교복 블레이저 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파라락 넘겼다. 흐음, 이라거나. 호오? 따위의 추임새를 넣던 그는 머지않아 한 페이지를 펼쳐 지우에게 내밀어보였다.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그 애는 무려 A랭크라고, A랭크.”

 물론 외모가. 유진은 강조하듯 말했다. 지우는 기가 막혀하며 물었다.

 “도대체 그 놈의 랭크는 누가 매기는 거냐?”

 “엄선된 과정을 거쳐 선별된 전문가들이 매기지.”

 전문가는 무슨 얼어죽을. 이렇게 말한 지우는 유진이 들고 있는 수첩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거긴 대체 여자들이 몇 명이나 적혀있는 거냐.”

 “, 아마 전원.”

 “전원?!”

 기겁했다.

 그것을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유진은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나라고 뭐든지 아는 건 아냐. 알고 있는 것만 알지.”

 “자랑이냐!”

 그때, 잠자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봄이는 곤란해 하며 마지못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유진이는 이러는 것만 아니면 참 인기 많을 텐데.”

 “이 녀석한텐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할 필요 없어. 그냥 솔직히 말해. 입만 다물면 된다고. 아니, 그냥 닥치라고.”

 “에이, 그래도 그 정도까진 아니.”

 “아하하…….”

 “? 부정 안 해주는 거야?!”

 유진은 쿠궁, 이라는 효과음이 자동재생 될 정도의 기세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 , 남이사!” 외치며 두 사람을 손가락질했다.

 “두고 보라고! 언젠가 멋진 여친을 데려와서 너희 앞에서 자랑해줄 테니까!”

 “. 잘도 그러겠다.”

 “최소 다섯 명 정도!”

 “퍽이나 그러겠다!”

 “나는, 하렘왕이 될 사나이다!”

 “꿈도 크네!”

 봄이는 다시 아하하,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세 사람은 그 후로도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봄이의 집 앞이었다. 지우와 유진은 아파트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서 봄이를 배웅했다.

 “먼저 갈게. 내일 봐~.”

 봄이가 손을 흔들자 유진은 , 내일 봐~.” 라며 똑같이 인사를 건넸고 지우는 말없이 손만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봄이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던 두 사람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진짜 아깐 왜 그런 거야? 유진이 물었다.

 “진짜 한겨울한테 관심 있어?”

 “그런 거 아니라 했잖아.”

 “오히려 관심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A랭크라고? 가슴이 A란 소리가 아냐. , A맞긴 할 테지만. , 혹시 A컵 싫어해?”

 “그러니까 관심 없다고!”

 “가슴이, 한겨울이?”

 “둘 다!”

 유진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럼 왜 그런 거야? 그에 지우는 시선을 돌리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딱히. 이유 없어.”

 날씨를 묻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

 유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의 집은 봄이의 집과 그리 떨어져있지 않았다. 어찌됐건 같은 단지 안이니까.

 “가봐.”

 “, 내일 봐.”

 둘은 항상 그래왔듯 중간지점에서 헤어졌다.

 그는 몇 분을 더 걸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녀왔어, 라는 말을 해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얼마 전에 사둔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냉장고 앞으로 갔고 늦을 것 같으니 저녁은 시켜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쓰인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그는 포스트잇을 떼어 반을 접고 근처에 있던 식탁 위에 휙 던져버린 뒤 냉장고의 문을 열고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찬장에서 컵을 가져와 주스 옆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고 곽을 기울이자 빨간 액체가 컵을 채워갔다. 반쯤을 채워 기울이던 것을 멈추고 뚜껑을 닫은 뒤 다시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고 컵을 들어 그대로 들이켰다. 그리고 싱크대로 가 수도를 열고 흐르는 물로 대충 헹구고는 식기건조대 위에 뒤집어 올려놓았다. 한껏 기지개를 켠 그는 거실로 자리를 옮겨 낮게 신음을 깔며 소파 위에 몸을 누이고 TV의 전원을 켰다. 그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 자신의 방으로 가 작은 책 한 권을 가져와선 다시금 소파에 누웠다.

 그 후에는 보지 않는 TV 소리와 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적막한 그의 공간 속에 다른 소리가 끼어든 것은 노을이 져가던 때였다. 머리맡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마구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읽던 책을 덮고 바닥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찬찬히 몸을 일으켜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몇 차례 두드리고 나서야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폰을 킨 뒤 윤봄이라 적혀있는 통화 상대를 반겼다.

 “무슨 일이야?”

 『잠깐 괜찮을까?

 유진은 흔쾌히 답했다.

 “물론이지.”

 

 유진은,

 아니,

 나는,

 개그를 담당하는 개그 캐릭터이고,

 분위기 메이커라는 소리를 듣고,

 눈치가 빠르고,

 능글맞고,

 여성을 밝히고,

 변태 같은 짓을 일삼아 얻어맞기 일쑤이고,

 여학생들의 랭크를 매기고,

 정보통이고,

 입만 다물면 인기 있을 거란 소리를 듣고,

 매사에 행동이 가볍고,

 경박하고,

 방정맞으며,

 빌어먹을 안경까지 써,

 자주 붙어 다니는 소꿉친구 녀석을 더 멋있게 보이게 만드는,

 ‘주인공의 친구.

 
+ 작가의 말 : 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 아 아임 피핑 피핑 피핑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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