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말이지, 남성의 음경이 여성의 음부에 들어가서 사정하면 정자랑 난자가 수정해...(이하 생략)"
드디어 읽었습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책! 갓 전역한 제게 노블엔진이란 출판사를 머릿속에 새겨넣게 만든 그 책! 그 책이 정발되는 11월 1일. 그리고 이 리뷰를 쓰는 11월 1일. 예. 저는 흥분한 상태로 이 책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전역 후에 처음 사는 책에 대한 기대감과, 그 처음 산 책을 새로운 블로그에 올린다는 설렘이 절 흥분시켰어요. 오랜만에 라이트노벨을 산다는 면도 컸구요. 어제인 10월 31일부터 잠도 자지 않고 이 책을 기다렸을 정도입니다. 진짜에요. 사실 새벽에 글쓰느라 밤샌 면도 있긴 하지만, 늦게라도 자지 않은건 이 책 때문입니다. 언제 택배기사가 와서 책을 던질지 모를 노릇이니까요. 어찌됐든! 신선한 책을 받아보니 기분이 좋더군요. 왜 사람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고 책을 사냐, 하면 단순히 책을 소유했을 때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흥분해서 무슨 말을 적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책을 받자마자 실시간으로 읽었고 이렇게 실시간으로 감상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헉,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감상글을 썼던가?"하고 후회할 것 같지만, 지금은 제 기분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책을 뜯었을 때의 내용물. 초회한정판/초판한정특별부록으로 이것저것 껴넣어줬습니다. 뭔가 계속 증식하는 느낌이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체라 마음에 듭니다. 자, 부록은 이쯤 소개해두고, 슬슬 책 감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손만 잡고 잤을 텐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진자로라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자세연이라는 여주인공이 있구요. 둘은 소꿉친구입니다.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올라가죠. 주인공 진자로는 스스로를 천재 과학도,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부르며 이상한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심심하면 세계정복을 말하는 괴짜입니다. 자기 외에 다른 이들을 '우민'이라 칭하며 무시하죠. 이런 진자로 옆에는 소꿉친구 자세연이 있습니다. 예쁘고, 천진난만하고, 긍정과 행복에너지로 주위에 있는 이들까지 치유시켜주는 캐릭터죠. 머리에 꽃 꽂았지만... 진자로는 자세연 집에 보모 역할로 종종 있게됩니다. 자세연이 워낙 순수(...)해서 실수도 종종할 뿐더러, 자세연의 부모님이 맞벌이라 자세연을 도와줄 이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어느 날, 자세연의 부모님이 3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난 밤. 혼자 자기가 무서웠던 자세연은 진자로와 같이 자자고 합니다. 육체적인 잠자리가 아니라, 그냥 어린애가 부모님 몸에 끼어 자는 그런 잠자리요. 같이 자는게 부담스러운 진자로는 "그럼, 우리 손만 잡고 자자."하고 말하게 됩니다. 자세연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이에 동의하고요. 그렇게 둘이 손만 잡고 잔 다음날 아침,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둘 사이에, 둘의 유전자를 쏙 빼닮은 어린애가 쌔근쌔근 자고 있었거든요. 혼비백산한 진자로가 어린여자애를 깨우자, 여자애가 말합니다. "아빠!" 예.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제목 그대로, '손만 잡고 잤을 텐데?!'
오랜만에 라이트 노벨은 즐거웠네요. 이런 경쾌한 분위기, 가벼운 전개. 퐁퐁 튀는 캐릭터성을 오랜만에 봅니다. 손만 잡고 잤을 텐데?!(이하 손잡잤이라 약칭하겟습니다)는 라이트 노벨의 특성을 그대로 따릅니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가독성. 만화같이 가벼운 전개. 그리고 단권으로 끝맺는 깔끔함. 손잡잤은 평균적인 라이트 노벨보다 훨씬 재밌는 묘사가 많습니다. 작가가 인터넷을 좋아하는지, 인터넷 유행어들이 책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짤방들을 긁어모아 글을 만든 느낌이랄까요. 읽으면서 좀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길을 벗어난 얘기지만, 제가 군대에서 읽었던 책들은 죄와 벌같은 묵직한 분위기밖에 없었거든요. 다시 원래 감상글로 넘어와서, 손잡잤의 아이디어는 분명 좋습니다. 제목이 주는 충격이 이 책의 50%는 차지할 겁니다. 그만큼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무지 강력합니다. 저도 "내용은 어찌됐든,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사봐야겠다!"하고 마음먹었으니까요. 일단 제목으로 떡밥을 물게 한 후에, 책은 설정을 풀어놓고, 독자를 계속해서 유혹합니다. 어떻게 끝을 맺는지, 그래서 캐릭터들의 선택은 무엇인지. 저는 이 떡밥에 낚였습니다. 읽고 난 후야 어찌됐든, 전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고요. 가독성은 훌륭했다는 평을 남기겠습니다. 제목에 꽂힌 분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되는 두 주인공이 이 여자애를 어떻게 다룰지 보고 싶어하는 분들은 한 번 이 책을 고민해보세요. 재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강력히 추천을 드리기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세부 감상평은?
*세부적인 감상평은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평가한 부분을 제가 별로라고 평가할 수도 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소설입니다. 정말로 아쉬운 점이 많아요.
1. 인터넷 개그(혹은 유행어)에서 따온 묘사, 비유가 너무 많습니다. 소설 처음 부분에야 "이야, 패러디도 넣었네?"하면서 웃었죠. 하지만 이 패러디가,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온다고 깨닫기엔 그리 많은 페이지가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 너무할 정도로 많아요. 게다가 패러디에 치중해, 이상한 비유까지도 보입니다. 마치 작가가 개그에 억지욕심을 부린 느낌입니다. 보통 소설 내의 패러디들이 보검에 박힌 보석 정도라면, 이 작가는 보석으로 검을 얼룩덜룩 도배해버렸어요! 총천연색 드립의 향연입니다. 제가 먹고 싶은 건 손잡잤이란 메인디쉬고, 패러디는 에피타이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메인디쉬를 음미하기도 전에 에피타이저들이 치고 들어와요! 거북합니다. 메인 스토리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어울리지도 않는 게 많구요. 나중가면 눈에 거슬릴 정도였습니다. 이건 확실히 너무합니다. 책을 읽다가 전혀 다른 걸 생각해버리잖아요. 아, 이건 이 짤방에 대한 거구나, 아 이건 이 내용 패러디구나, 하다보면 스토리 몰입도가 저해된 다음입니다. 작가가 조절을 잘못했어요. 후속권을 낸다면,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2. 왜 주인공은... '합체'를 거부하는 겁니까? (혹시 모를 스포일러 방지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지만, 아. 뭔지는 뻔히 알겠지만서도...) 물론 설명이야 나옵니다. 작가가 이런 설정까지 안 해놨을리가 없죠. 하지만, 작가가 해놓은 설정은 부실합니다. 책에 나온 진자로의 '거부'프레임은 주인공을 위해 동정은 줄지언정 독자가 납득하거나, "그렇구나..."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아닙니다. 보통의 둔감/숫기없는/여색거부 캐릭터는 "너 고자구나.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구나."하고 개그소재, 혹은 독자의 울화통을 뒤집게 하는 즐거운 장치가 될 수 있으나 손잡잤의 주인공은 이 경우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의 주연에게는, 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쓰면서 이걸 고수한다는 건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 캐릭터 설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글부터가 합체하라고 대놓고 종용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말이죠. 단순히 저울 개념으로 봐도 진자로 vs 진자임, 자세연, 신난다, 하나봄입니다. 주인공이 과거를 풀어내고 내가 옳아!를 외쳐도 저는 저 저울이 평행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보이네요. 중반부터 답답함만 느낄 뿐이었습니다. 작가는 해명을 미룬 뒤에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클라이막스를 폭발시킬 준비를 한 듯 합니다만, 저는 작가가 깔아놓은 노선에 불만일색이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 궁금증이 일지도 않았어요. 일? 가족? 이미 프롤로그부터 예상이 갔습니다. 초반 부분에 '일'에 관한 단어를 검은색으로 표시한 건 실수입니다. 복선이 대놓고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닙니다. 주인공에 대한 합체거부의 반동은, 그대로 3번으로 이어집니다.
3. 도무지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할 수가 없어요. 전 후반부에 진자로가 독백하며, 소리치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걸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캐릭터가 깨져나갔습니다. 어떻게 이리 속좁고, 배배꼬이고, 투덜대고,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싸이코적인 주인공에게 공감을 하란 말입니까? 진자로는 이도저도 아닙니다. 공감이 가지도 않고, 반면교사 삼을 수도 없고, 그냥 어릴적부터 뒤틀려버린 슬픈 캐릭터입니다. 라이트 노벨 특유의 과장이 이런 면에서 퍼질 줄은 몰랐습니다. 주인공은 어수룩한 싸이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과장된 면이 이 음습한 모습을 더 부각시킵니다. 마지막에 작가가 커버치듯 덮어주긴 합니다만, 그리고 결국 주인공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만, 저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4. 캐릭터들. 총 5명의 캐릭터가 나옵니다. 소수가 나오는 만큼, 캐릭터들의 개성이 잘 갖춰져 있을까요? 하지만 두 캐릭터는 공기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량 상 어쩔 수 없다쳐도, 이 공기같은 비중에 여주인공이 포함됩니다! 작중에서도 "왜 나랑은 안 놀아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중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풀어보자면 여주인공이... 도무지 특성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전 주인공이 "꽃 꽂았다"라고 표현할 때 감탄하며 연필로 밑줄을 좍 그었습니다. 꽃 꽂았다. 이만큼 여주인공을 잘 표현할 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성은 기대와 달리 서서히 묻혀버립니다. 물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자세연이 등장할 기회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 진자임을 띄워주면서도 자세연을 살릴 방법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화해? 이렇게 본다면 자세연은 초반부에 "꽃 꽂았다"라는 말과는 달리 너무나 수동적인 캐릭터였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인공을 싸이코틱하게 비춰주고, 다시금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게 하는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전 혹시나 후반부에 진짜 제대로 꽃이 꽂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밋밋한 캐릭터로 끝나더군요. 그리고 진 씨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조연. 신난다는 자세연보다 캐릭터가 없고, 하나봄은... 캐릭터성은 좋습니다만, 주인공과의 1:1 장면은 아쉬웠습니다. 계속 고압적이고 불리한 대화로 이어갔어도 재밌었을텐데요. 캐릭터들 이름은 마음에 듭니다. 작가의 개성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캐릭터 중 가장 승리자는 진자임입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적 역할이며, 설정도 좋아요. 책의 구성이 50%가 제목이라면, 30%가 진자임입니다. 진자임을 통한 연결은 훌륭했어요.
그래서, 손만 잡고 잤을 텐데?!에 대한 제 평점은?
두구두구두구두구...
빰!
10점 만점에 4점입니다.
저조차도 아쉬운 평점입니다. 뛰어난 제목, 진자임이라는 캐릭터, 과거를 잇는 커넥션, 결말 부분은 훌륭했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인터넷 개그의 사용, 여주인공의 비중 증발, 2% 부족한 장면들, 이 책의 대부분을 묘사한 주인공의 행동에 납득이 불가능하고, 매력이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