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고 들은게 얼마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라이트노벨 리뷰하는 사람 중에서, “작가의 작품관을 분석하자!”하는 식의 글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만약 있으면 연락주세요. 그 글 좀 보고 공부 좀 하게) 이 단락은, 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부터 분석하냐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대답입니다.
머리 비우고 볼 수 있는 유쾌한 내용들을 지향하는 작품이 많은 라노벨 판에서는 흔히 간과되기 쉬운데, 작가와 독자는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관계입니다. 즉 의사소통이라는 것이죠. 그 과정에 있어서 즐거움이 있어야겠지만,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독자가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렇다면, 독자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주는 게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겠죠.
가볍고 유쾌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류호성 작가는 집필활동에 있어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는 많은 고민을 하고, 이를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작가가 독자에 있어서 진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독자로서 작가님의 성의에 대해서 최소한이나마 성의를 보여드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건 부수적인 이유인데, 류호성 작가님은 인터넷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관을 많이 보여줍니다. 즉, 리뷰어한테 참고할 만한 자료를 많이 제공합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독자에게 보여줘야지!”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작품이 좋으면 그만이지.
(2)류호성은 어떤 작품관을 가지고 있는가?
● 류호성의 발언 탐구
누군가를 알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직접 관찰해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을 보는 것이지요. 같은 원리로 어떤 작가의 작품관을 알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작가가 직접 이야기한 내용을 보는 것일테죠.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류호성's 오피셜!
작가로서 작품관은?
뭐 그런 거창한 것은 아직 없지만, 일단 지금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와 '사람의 이야기를 하자',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대피처는 될 수 있어도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입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어떠한 이야기, 즉 사건과 고난, 갈등, 해결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점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은 별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이야기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현 시점에서는 인간만이 제 글을 보니까 사람의 감성,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겁니다. 세 번째가 사실 지금으로서는 제 가장 중요한 작품관인데, 이야기에 빠져서 현실을 버리고 이야기로 탐닉하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오늘 지친 하루를 잠시 풀 수 있고, 한 바탕 웃거나 울고, 그러면서도 용기를 가지고 '좋아, 내일도 힘내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피는 됩니다. 다시 돌아오기 전 잠시 피하는 거니까요. 도피는 안 됩니다. 그건 도망치는 거니까요. 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그 희망이 사람을 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무엇보다는 그런 걸 하고 싶군요.
(출처: 류호성 작가의 ask.fm)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와 '사람의 이야기를 하자',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대피처는 될 수 있어도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세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일단 저는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한 세 번째 작품관, '이야기는 대피처는 될 수 있어도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 희망을 주는 이야기: 어떤 식으로?
이야기에 빠져서 현실을 버리고 이야기로 탐닉하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오늘 지친 하루를 잠시 풀 수 있고, 한 바탕 웃거나 울고, 그러면서도 용기를 가지고 '좋아, 내일도 힘내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피는 됩니다. 다시 돌아오기 전 잠시 피하는 거니까요. 도피는 안 됩니다. 그건 도망치는 거니까요. 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그 희망이 사람을 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무엇보다는 그런 걸 하고 싶군요.
현실을 버린 이야기는 싫다,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사람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모 마법소녀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이 작품관에 대한 류호성 작가의 발언이었습니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가 이를 표현하고자 했는가에 대해서 짚어보는 것이겠죠.
전 “손만 잡고 잤을텐데?!”란 작품을, 인간이 아픔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보고 있어요. (좀 더 세밀하게 나누자면 1~2권은 상처의 극복, 3~4권은 비극의 극복인데 일단 퉁쳐서 아픔의 극복) 왜냐면 캐릭터 조형이랑 사건 전개가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든요.
자세한 것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손잡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 상처를 지니고 있고, 그 상처에 얽매인 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중 속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어 가지만, 들이닥친 비극 앞에서 미처 낫지 못한 상처가 터져서 다들 좌절하지요. 결국은 회복하지만. 읽어보신 분들은 이해할 수 있으실 텐데, 인물의 말과 행동이 모두 마음 속 상처와 이어져 있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상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서사의 구성도 그래요. 많은 라이트노벨은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인물의 내면에 대해서 다루더라도, 이는 중심사건이 진행되어가는 가운데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느끼는 식으로 이루어지죠. “손잡잤”은 반대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상처를 마주보고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서사가 진행됩니다. RPG게임에서 메인퀘스트를 깨야지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새롭게 행동할 것을 다짐하는 것을 통해서 중심사건이 진행되어 갑니다.
● 이 부분도 놓치지 말기: 인간의 깊이를 담아내는 법
캐릭터에 깊이를 담는 방법은?
캐릭터에 깊이를 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씇) 나름대로 저는 캐릭터의 깊이는 다양한 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한 가지 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친구를 대할 때도 이 친구 저 친구 조금씩 태도가 다를테고, 그 안의 감정이 다를테고, 만약 있다면 애인, 부모님, 등등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예로 들면 글이 잘 써질 때의 자신과 안 써질 때의 자신을 스스로 대하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죠. 전 그런 면을 최대한 고려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1차적인 면 안에 숨어있는 다른 면모. 긍정적인 캐릭터라고 해도 불안이 있을 수 있을 테고, 불안에 젖은 캐릭터도 희망이 숨어있을 수 있을 테고, 겉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지만 속으로는 동경이라든지 질투심이라든지 경쟁심이라든지 뭐 그런 감정이 숨어있을 수도 있을 테고... 최대한 '캐릭터' 보다는 '사람'에 가깝게 그리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생기 없는 인물은 싫어요. 그리고 생기는 간극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요.
출처: 류호성 작가 ask.fm
사실 제가 손잡잤에 대한 “좀 더 제대로 된”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손만 잡고 잤을텐데?!”는, 보다 깊이 있는 '인간‘을 표현해내기 위한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아빠 딸쳐!”나 “조임이...”같은 드립을 치기 위해 쓴 소설 같지만, 사실입니다.
인간은 겉모습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존재가 아니에요.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고, 대하는 상대와 처해진 환경에 맞춰서 여러 가지 형태의 말과 행동을 보입니다. 이건 단순히 겉과 속이 다르다-정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겉모습=가짜/속마음=진짜 같은 단순한 공식으로 인간은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겉모습과 속마음 모두 진짜이며,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기고 싶어하는 일면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의 인간이 이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다 숨겨놓아서 스스로도 발견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숨겨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말과 행동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어디에선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많은 라이트노벨들이 캐릭터를 너무 평면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캐릭터라면 또 모르겠지만, 인간은 몇몇 컨셉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에요. 류호성 작가는 이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고, 이를 작품에 반영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2장부터 시작되는 인물 리뷰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 류호성의 작품관 정리해보기: 인간, 인간, 그리고 또 인간
앞에서 길게길게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3줄요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류호성 작가가 쓰고 싶은 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간을 위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읽고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작가의 작품관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어떤 내용을 사용했는가-이것이 손잡잤의 주요 주제(라고 제가 생각하는)인 “인간이 아픔을 겪고 이를 넘어서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작품관에 낑겨넣기는 좀 애매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캐릭터”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등장인물. 보다 입체적인 등장인물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이 작품의 또 다른 감상포인트입니다.
● 차회 예고
일단 1장을 어찌어찌 썼습니다.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좀 있는데, 이미 한 번 썼다가 뒤짚어엎고 다시 쓰는 거라서, 제 능력으로는 더 이상 잘 표현하는게 불가능하겠구나-싶어서 일단 포기했습니다. 얼른 2장이나 써야지.
2장부터는, 1장에서 분석한 류호성의 작품관에 따라서 손잡잤의 주요 인물들-진자로, 자세연, 진자임&하나봄, 그 외 기타인물들(진지혜와 신난다)-에 대한 분석을, 작중의 사건 흐름에 맞춰서 해나갈 예정입니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2장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 2장부터는 아마, 상담학적인 관점에서 리뷰가 진행될 겁니다. 글쓴이가 사회복지학도라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 리뷰는 전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 및 이에 따른 행동양상을 분석하기 위해서 쓴 글이라서, 문체라든지 구성이라든지 드립이라든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