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나시지 않겠습니까?
글쓴이: 오페
작성일: 12-10-31 22:20 조회: 2,442 추천: 0 비추천: 0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나시지 않겠습니까?


Prologue.


집사가 물었다.


“…정말 하는 겁니까?”


마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는겁니다.”


자객이 나이프를 돌리며 묻는다.


“가능은 해?”


자동인형이 조용히 답했다.


“리미터가 완전 해제되고 325.23초 안에 공격가능 범위 내로 돌입할 수 있다면 2.95%의 확률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후 99.5%의 파츠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


자객이 웃기지도 말라는 투로 반박하자.


“뭐? 2.95%? 가당키나 하냐, 2.95%?”


작달만한 무도가가 호쾌하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반론한다.


“할 수 있다! 리리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니까 유라도 열심히 하면 된다!”


소년은 검을 한 바퀴 돌리며 남 일 말하듯 말하고.


“뭐.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울분마저 터진 자객이 고함을 내지른다.


“야!”


자객은 우악스럽게 소년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지만.


“너 때문에 하는 거에요! 너 때문에!”


소년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다.


“누가 너보고 하랬냐? 하기 싫음 집에 가라. 나는 안 말린다.”

“-윽.”


집사가 중얼거렸다.


“지는 안 다친다고.”


소년이 집사를 노려봤다.


“너 뭐라고 했냐?”


집사가 답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인님.”


마법사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양 손바닥을 치며 환히 웃었다.


“자자, 싸우지들 말구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다 같이 힘내요.”


집사가 거기에 더했다.


“확실히 얼마 남지 않았죠, 죽기 직전까지.”


귀가 밝은 마법사는 그것을 잘도 집어내었다.


“에이, 아직 시작도 전인데 그런 말 마시구요. 설마 공주님께서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보내셨겠어요?”


‘보냈을 것 같아.’


-라고 집사와 자객, 그리고 소년이 동시에 생각했지만 그냥 생각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소년이 뭐라 말한다.


“뭐, 용한테 깔려 죽으나 빚더미에 깔려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겠어?”


집사가 그를 노려보았다.

“슬픈 현실 좀 상기시키지 말아주실래요, 주인님?”


소년은 애써 무시했다.


“아, 뭐가 오는데?”

“은근슬쩍 넘어가시지 마시죠.”


자동인형의 태세가 심상치 않았다.

“시속 128.43km의 속도로 1.43m 직경의 화염구가 3.21초 후 직격합니다. 400m3 의 영역의 제 1종 방어막을 전개합니다. 버려진 숲의 파장이 맞지 않아 응전이 늦을 확률은 75%입니다.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자객과 무도가, 그리고 마법사가 자동인형을 보고 외쳤다.


“뭐!”

“우와! 뭐가 온다나보다, 오라버니야!”

“어머나. 다들 조심하세요.”


그들을 향해 화염이 돌격해온다. 얼굴이 점차 붉어지는 가운데 소녀들이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그런 것에 익숙치 못한 소년과 집사는 그저 멍하니 유언을 남기듯 중얼거린다.


“아, 망했네.”

“망했네요.”






1. 엔다이브 백작 가의 사정


“망했군.”


예전에는 수많은 사용인들과 갖가지 화려한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을 커다란 공간. 꽃가루 대신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는 독촉서. 그리고 대충 도끼로 썰어 만든 볼품없는 나무 의자에 달랑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은 이 엔다이브 백작가의 재정상태가 어떠한 지 잘 설명하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미드릭 라이크리스 노튼. 엔다이브 백작가의 장남이자 유일한 적자인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대책 회의라는 것을 해볼 참이지만. 남장을 하고 있는 금발의 집사 아가씨가 답하듯.


“망했습니다.”


대책회의는 커녕.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것은 바닥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다갈색 양갈래머리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한참 전에 망했지.”


소녀의 주위론 수많은 천과 다 완성되지 못한 인형들이 널려 있었고, 그녀보다 더 어려보이는 또 다른 소년소녀들과, 그들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그 작은 손으로 하나씩 뭔가를 붙들고 있었다.

아기 새들이 지저귀었다.


“뭐가 망해요, 큰 언니?”

“뭐가 망해요, 누님?”


조금 큰 새들이 한숨만 내뱉을 뿐 뭐라 하지 못하는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소녀가 ‘너희들은 몰라도 돼’ 라고 딱 잘라 끊었다.


“몰라도 되는 게 뭐에요, 큰 언니?”

“몰라도 되는 게 뭐에요, 누님?”

“안나, 그건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테오, 안나 말 하나하나 따라하지 말고. 둘 다 좀 조용히 있어.”


하지만 그들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곧 시선을 미드릭에게로 돌렸다.


“그나저나 배고파요, 오라버니.”

“그나저나 배고파요, 형님.”


미드릭은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 잠차고 있었지만, 이미 한 놈이 입을 열 때면 다른 놈의 입도 열려있다.


“저도요.”

“나도요.”

“나도! 나도!”

“뭐 먹을 거 없어?”

“언제 우리 집에 먹을 게 있었다고 그래.”

“하여간 이놈의 집구석,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찰스, 내 이놈의 자식!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마리, 내 이놈의 자식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니?”

“우에엥-!”

“애 좀 달래라. 시끄럽다.”

“싫어. 네가 해.”

“엄마 보고 싶어.”

“우에에에에엥-!”


작금의 우울한 상황에 온갖 잡소리가 끼어들어 열이 오르고 울화가 터뜨려져 나온다.


"아, 그만! 그만!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야! 그레이스는 애들 좀 조용히 시켜라!”

“문젭니다, 주인님”


엔다이브 가의 여집사가 기계적으로 답한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었다. 첫째로는 재정 및 채무문제.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애들이나 집안의 상태를 보아하면 알 수 있었다. 둘째로는 식량문제. 첫째와 동일. 셋째로는 채워 넣어야할 입 개수 문제. 그 문제는 단 한사람으로부터 기원한다.

선대, 그러니까 4대 엔다이브 백작이라고 한다면야 페일랜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카리스마. 신의 축복이라 할 정도로 타고난 외모.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라도. 한때는 페일랜드의 공신이었던 엔다이브 백작 가 출신. 유일한 적자. 어디 그 뿐이랴.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것을 세는 것이 훨씬 빠른 희대의 엄마 친구 아들. 그러나 그에게는 딱 한 가지 흠이 있었다. 저 많은 아이들이 바로 어디서 왔겠는가. 그렇다. 여자다.

영웅호색이라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가 여자 좀 밝힌다고 뭐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선대 엔다이브 백작은 한 번도 임자 있는 여자나 너무 어린 여자, 나이 많은 여자는 건드리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여자를 제법, 아니 많이 밝힌 것치고는 사교계의 추문에 '생각보다' 들지 않았다. 그는 요정의 피가 섞였다고 하는 페일랜드의 아리따운 귀족 아가씨들에게도, 공작같이 화려하게 꾸며댄 길거리의 여자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쳐 봤다면 누구라도 원했을 것 같은 엔다이브 백작의 마음은 마치 길바닥에 가냘프게 피어나는 들꽃과 같은, 아니 그보다는 밭에 자라나는 보리와, 수수와, 밀과 같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처녀들에게로 사로잡혀있었다.

소문이 안 나는 건 성이나 사창가대신 깡시골을 전전했기 때문이랴. 여기에는 각자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기에는 여백이 부족한 관계로 간략하게 키포인트만 나열한다.


1. 그가 작업한 여자들은 백이면 백 다 넘어왔다.

2. 그는 자기 아버지와는 달리 어찌나 절륜했던지 모든 여자들에게 하나씩 애를 배게 했다.

3. 그는 처녀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4.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그녀들과 그녀들의 가족들은 떠나는 그나, 남겨진 아이들에게 제법 관대했다.

5. 그도 제법 관대한 나머지, 잘 먹고 잘 살라며 있는 돈, 없는 돈, 남의 돈 다 털어서 살림에 보태라고 줬다.

6. 여기서 대량의 빚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7. 무슨 정신으로 한 소리인지, 그는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아이들을 제 집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조 했다.

8.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들에게 수많은 백작가의 물건을 뿌렸다.

9. 후에 몇몇의 그녀들이 무슨 사정에 의해 진짜로 그 아이들을 백작가로 보냈다.

요약 및 결론. 구국의 영웅이었던 엔다이브 백작가가 단 한 세대 만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선대 백작의 무분별 한 씨뿌리기와 돈 뿌리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뭘 어떡해요. 죽어서라도 돈을 벌어와야죠.”


포니테일 여집사가 퉁명스럽게 정답을 말하자 주인은 조용히 한탄한다.


“죽어서라도 버는 방법이 있다면 벌써 골백번은 더 죽었겠지.”

“…성을 팔까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일단은 문화유산이라 팔면 잡혀간다.”

“땅은요? 아니, 예전에 다 팔았나?”


라며 자문자답한 여집사는 스윽- 하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이 놈의 집구석은 정말 뭐 하나 있는 게 없네요.”


그레이스가 차갑게 한 수를 놓았다.


“딱 하나 빼고.”


그레이스가 수많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모습을 보자니 공기가 얼어붙는다. 여집사는 눈치를 살피며 주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을 건넸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몇 명 내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솔직히 주인님과 혈연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불분명한데, 이 분들을 굳이 주인님께서 다 건사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잔인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이 수많은 아이들 중 적자는 미드릭 단 하나 뿐. 거기다 현재 백작은 미드릭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전부다 내보낼 수도 있다.

미드릭은 단호했다.


“안 돼.”

“왜요?”

“아버지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두어야지. 나는 누구처럼 책임지지 못할 짓은 안한다. 누구의 배를 빌어 태어났는들, 엔다이브 가와 인연을 맺은 분명하니 엔다이브의 주인인 내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


뒤에 후광이 비칠 정도로 지나친 관대함에 여집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핏줄은 핏줄인가? 그러나 사방에 뿌려진 편지 뭉치가 그녀에게 현실을 상기시켰다.


“지금 이걸 다 처리하지 못하면 책임이고 뭐곤 간에 그냥 하나씩 줄줄이 끌려가게 생겼는데요?”

“아, 그런가.”

“아, 그런가는 무슨 아, 그런가 입니까! 어떻게 좀 해봐요!”


미드릭은 모든 걸 포기하는 얼굴이다.


“어허허. 이런 젠장,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

“그러시겠죠. 하지만 생각해내요. 죽어서라도 생각을 해내!”

“…공작 가를 털까?”


그는 그리 말하며 진지하게 검을 쥐었다. 흐리멍덩한 눈에 이제야 빛이 들어온다.


“그 실력으로 받아준 것만 해도 용한 공작 가를 어떻게 텁니까? 잘못하면 지금 하던 사병일도 못하게 되는 수가 있어요?”


빛은 금방 사그라졌다.


“좀 더 현실성 있는 계획은 없습니까.”

“네가 생각해 내. 네가 이 집 살림하잖아.”

“주인님이 사기 쳐서 종신 계약만 해놓지 않았어도 진작 나갔습니다, 이놈의 집구석.”


미드릭은 멋지게 선언한다.


“내 하나 밖에 없는 특기다. 허튼 일엔 쓰지 않아.”


멋져 봤자 개소리다.


“아, 그걸로 돈을 벌어오라고요!”


여집사는 결국 폭발했다. 이제까지 멀쩡했던 게 오히려 용하다.


“사기를 칠라 그래도 종자돈이 있어야 사기를 칠 거 아니냐.”


여집사는 윽박질렀다. 이제 주인이고 뭐고 없다.


“그럼 결혼을 해! 돈 많은 노처녀나 과부 많잖아? 젊은 거에 환장하는 아줌마들 잘 찾으면 있을 거 아니야! 나중에 덕 좀 쌓겠다고 수도원에 기부하겠다고 난리치지만 않으면 대충 해결할 수 있다고! 아니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부자 평민이라도 찾아내! 데릴사위로 가든 뭐하든!!!”


나이가 조금 있어도 미드릭에겐 약혼은커녕 그 흔한 혼담조차 없었다. 알비나가 과부 귀족이나 돈 많은 평민에게 장가를 들거나 데릴사위로 가라고 할 정도로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그 이유란 이 시점에서라면 누구나 다 알거라 본다.

그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설파했다.


“결혼은 신성한 거다. 거기다가 여자에겐 평생의 꿈일 텐데, 그걸로 사기 같은 걸 칠 수는 없지. 그리고 나는 연애결혼이 좋다.”


현시점에서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진리를.

여집사는 미칠 지경이다.


“지금 흰 빵, 검은 빵 가릴 때야? 누가 사기 치래? 그냥 결혼만 하라고! 결혼을! 지금 다 팔려서 노예 계약하게 생겼는데 연애결혼 이야기가 나와!!!”


미드릭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난 어머니처럼 사랑 없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녀에겐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렇다고 사랑이 넘치시는 아버님처럼 되면 대략 곤란한데?”


미드릭도 저 말에는 대항해낼 재간이 없다. 그는 이제 되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젠장할, 작위를 팔까?”


여집사는, 저 인간이 지금 제 정신인가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걸 왜 팔아! 지금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게 그나마 그거야!! 아, 결혼을 하라고, 결혼을!!!”


잠자코 있던 그레이스가 짧게 둘을 불렀다.


“…오라버니. 알비나.”


그레이스가 가볍게 부르기만 해도 두 사람의 등골은 오싹해진다. 그녀는 저 수많은 아이들을 통제, 아니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자. 소음공해에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들어야 한다.


“왜, 왜 그레이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레이스 님?”

“리리가 지하실에서 뭔가를 찾았나봅니다.”


그 때 계단에서 작달만한 체구를 가진 이국의 소녀가 작은 상자를 들고 총총히 걸어 나왔다. 무척이나 작달만하고 어여쁜 소녀였는데, 페일랜드나 그 인방 어느 나라의 복식이 아닌 차림새와 납작하고 둥근 얼굴형에 새까만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녀 조금 이질적인 인상을 주었다. 소녀는 여기저기 다친 건지 손과 허옇게 드러난 다리에 붕대를 휘감고 있었고 그나마 남은 부위에도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저 고사리 같은 두 손에는 웬일인지 고풍스러워보이는 상자가 들려있었다.


“막내야- 아니 이제 막내가 아닌지 오래됐지. 그게 뭐니?”


미드릭이 부르자 소녀는 쪼르르 달려와 그에게 상자를 턱 하니 안겨주었다.


“리리가 지하실에서 찾았다! 비싸 보이는 게 있으면 그레이스 언니야가 오라버니야에게 갖다 주라 했다. 리리가 벽돌이 움푹 들어간 곳을 걷어찼더니 이게 나왔다! 비싸 보인다! 오라버니야에게 준다!”


미드릭은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이국의 소녀는 기쁜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래, 잘했네. 그런데 얘들아. 얘 말투는 좀 고쳐주라니까 왜 아직도 그대로냐?”


진정했는지 알비나는 평소의 말투로 돌아왔다.


“손 붙잡고 가르칠 시간이 있어야 가르치죠. 그나마 배운 것도 용합니다.”

“쯧, 글은 여전히 못 쓰고?”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요. 돈도 없고. 그냥 빨리 상자나 열어요.”

“쩝, 차용증서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여기서 또 뭘 빌릴 수도 있습니까?”


미드릭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웬 반지 하나와 왕실의 문양이 그려진 편지가 있었다. 미드릭은 왕가의 문장이니 뭐니 하고 편지는 대수롭지 않게 집어 던지고 반지에만 집중했다.


“득템이다! 잘했다! 잘했어!”


리리의 머리를 더 헝클어뜨려지고 소녀는 꺄꺄 웃었다. 알비나는 미드릭이 무시한 편지를 읽어 내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주인을 불렀다.


“주인님.”

“왜?”

“약혼자가 이미 있으시네요.”


미드릭이 리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알비나를 바라본다. 리리도 알비나를 보고 갸웃한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약혼을 해.”


알비나는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그에게 보이고, 미드릭이 그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다. 리리와 그레이스도 집중했다.


“페일랜드의 시조 제나르의 가면과 요정의 여왕 알타미라의 날개를 걸고, 차기 5대 엔다이브 백작, 미드릭 라이크리스 노튼과 페일랜드 제 3왕녀, 카트리나 루스 파이오니아 메를린 오렐리어-테스의 약혼을 3대 엔다이브 백작 데이비스 할 노튼과 페일랜드 국왕, 아드리안 5세의 이름으로 시행한다. 태양력 1523년. 9월 18일…. 서명….”


알비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렇다네요. 감축 드립니다. 주인님.”


미드릭이 알비나를 노려보았다.


“이거 진짜냐? 가짜 아냐?”


그녀의 대답은 명료했다.


“우선 데이비스님의 서명은 확실합니다. 왕가의 낙인도 양각으로 되어있어 색을 하나하나 칠한 것이고, 잉크도 종이도 각각 노네트 지방과 글로스터 지방의 공정 특유의 향내가 납니다. 둘 다 아시다시피 최상급 물품이고요. 여기까지야 낚기 위한 투자라 쳐도. 제나르의 가면과 알타미라의 날개에 거는 맹세를 들먹인 걸 보면…. 진짜인건 맞네요.”


가면 쓴 용사 제나르와 물빛 날개를 지닌 요정 여왕 알타미라의 이야기는 페일랜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신화이자 역사. 페일랜드 사람들은 종족을 뛰어넘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두 시조를 동경해, 그들의 가면과 날개에 맹세를 하고 결코 어기지 않는 풍습을 지녔다. 이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국왕이라도, 장난이라 우겨도, 여기에 건 말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게다가 보란 듯이 계약서까지 있었으니.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내, 내가 약혼이라니! 약혼이라니! 그럼 나한테 약혼자가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그’ 카트리나 공주가?!”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약혼인데, 상대가 최악이다, 라고 미드릭이 식은땀을 흘리건 말건 알비나는 태평했다.


“그렇다네요.”


그레이스는 조용히 리리를 불렀다. 아무리 그녀라도 공식적인 가문의 일에는 그녀들이 상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 리리도 큰 오빠의 안 좋은 낌새를 눈치 채고 조용히 다른 아이들 곁으로 가 조용히 있었다.

어린 백작의 머리에 두통이 밀려왔다.


“잠깐. 나, '그' 공주랑은 일면식도 하나 없는데?”

“이 바닥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새삼스럽게 뭘.”


정략결혼이 워낙 난무하는 곳이다 보니 사실 이런 계약서는 놀랍지도 않다. 문제는 상대. 그리고.


“그건 그렇긴 하지만…. 뭐냐고. 그런 중요한 편질 왜 지하실에 박아 놓은 건데?”

“선대 백작님이 안에 든 반지를 팔아먹으실까봐 숨겨두신 거겠죠.”


미드릭은 납득했다.


“그렇군.”


허나 의문은 그치질 않는다.


“좋아. 그럼, 이건? 빈털터리 백작이랑 공주님이랑 약혼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데이비스님은 선대 백작님과는 달리 왕국의 공신에 아드리안 5세의 오랜 친우이십니다. 첫째 공주님도 아니고 셋째 공주님이시니까. 무리 좀 하면 못할 건 없죠?”


보통의 셋째 공주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이것도 납득했다. 그렇지만.


“그런데 넌 아까부터 나보고 결혼 결혼하더니 정작 진짜 약혼얘기가 나오니까 왜 이리 조용해?”

“어차피 이 약혼은 안 되거든요.”


미드릭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상대가 ‘그’ 카트리나 공주님이시니까요. 이 시점에서부터 제나르의 가면과 알타미라의 날개에 거는 맹세는 공 쳤습니다.”


카트리나 공주의 이름은 페일랜드 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유명했다. 페일랜드 고유의 마법인 요정 마법을 때려치우고 강력하기는 하나 잔혹하기로 유명한 마녀의 마법을 택한 이단아로서. 무자비한 성품과 끓어오르는 호승심, 그리고 잔악한 행동으로서.

마녀왕이 최강의 마녀라면 그녀는 최흉의 마녀일 것이다. 그녀의 화려한 전적과 소문은 대략 이러하다.


1. 왕도에 집결한 반란군을 개인 자동인형부대로 단 하루 만에 정리했다.

2. 스테나 해협에 출몰한 해적들을 하필이면 '그 날'이라 기분이 안 좋아서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했다.

3. 바이런에 위치한 마력석 광산, 블레이크에 위치한 요정광 광산을 무력 점거한 뒤 차후 승낙을 받아냈다.

4. 매일매일 별궁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5. 심심하면 개인 부대를 이끌고 남의 땅을 정복하고 있다.

6. 심심하면 별궁에서 콜로세움을 연다고 한다.

7. 해적을 쓸어버린 이유는 그들이 가진 마도구가 탐나서 그랬다, 혹은 배에서 일하던 미소년이 탐나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8. 그녀는 신대륙에도 관심이 있다 한다.

9. 그녀가 개인부대를 가지고 있다거나 몰래 별궁에 자동인형 공장을 세웠다던가, 반란군을 처벌했다던가, 해적을 소탕했다던가에 대한 왕의 허락은 당연히 받지않았다.

10. 그 외 밝히면 위험한 내용이 수두룩.

11. 그 외 밝히면 끌려갈 내용이 수두룩.

12. 그 외 밝히면 수위가 넘어갈 내용이 수두룩.

13. 그녀가 반란군을 처리하고 해적을 소탕하고 신대륙에 관심을 쏟는 것은 왕위를 노려서 일지도 모른다.


미드릭은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이 집이 더 망할 수가 있나?”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