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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마술사
글쓴이: kalvin
작성일: 12-02-15 23:51 조회: 4,413 추천: 0 비추천: 0

프롤로그




승현은 멈춰 섰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을 만끽하고 있던 것뿐이다. 시험이 다가오는 것과 함께 삶의 템포가 한 박자 빨라져 숨 돌리기도 힘들었던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집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세상이 붉게 변하는 이질적인 시간에, 하루를 정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멈춰선 것은 어린이 놀이터의 벤치에 앉은 채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목 밑으로 살짝 내려오는 금발에 캐주얼한 옷차림은 크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금발이야 흔한 특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눈에 띌 정도로 드문 것도 아니었다. 소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일단 하늘을 향해 있었으나 결코 응시하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길을 잃은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에 보인다는 수상한 움직임이라던가, 초조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어린이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있는 10대 소녀는 상당히 조화로워 보였기 때문에 주시하는 사람은 승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현이라는, 특별할 것은 전혀 없다시피 한 이 평범한 학생은 멈추어 서서 소녀를 응시하였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돌리며, 소거법으로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정보들을 지워나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상쩍은 것은 소녀가 아니라 그 소녀를 응시하고 있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승현은 주변의 사람들까지 무슨 일인지 신경 쓰게 만드는 눈초리를 소녀에게 몇 분 단위로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대놓고 자신을 쳐다보는 눈초리를 소녀 또한 물론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그녀는 방관이라는 태도로 그를 쫓아버릴 생각이었으나, 승현은 물러설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소녀는 옷매무새를 살짝 점검하더니, 서둘러 자리를 떴다.

소년은 망설였다. 지금 저 사람에게는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까지 피하는 사람을, 잡아서 추궁하는 것도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도리어 생각한다. 자신이 왜 지금까지 주변을 떠돌고 있었던 것인지를. 오늘의 산책은 오늘 하루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처럼 바쁘게 보낸 하루가 아니더라도, 이런 거리 산책은 승현의 일상의 일부였다.

이 습관은, 단순히 빠른 삶의 템포 속에 잠깐의 쉼표를 주기 위해서였는가?

아무것도 아닌 거리 속에서 사색하기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이 지루한 일상의 삶을 끝장내는 방아쇠를 찾기 위해서였는가.

답은 분명히 나와 있었다. 이런 거리 산책뿐만이 아니다. 한동안 승현은 그녀와 같은 존재를 찾기 위하여 살아왔다. 급하고 빠른 방법은 아니었지만, 계속하여 끝까지 해낼 경우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성공이 언제 찾아올지는 스스로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성공이 찾아올 때를 기약하며 더 확실한 올가미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장담할 수는 없어.’

승현은 확신을 가지며 움직인 게 아니다. 백분율로 따져보았을 때 확률은 20%가 될지 안 될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그러나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녀를 빠른 걸음으로 확실히 쫓고 있었다. 일말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스토킹이라는 미친 짓거리를 자신 있게 저지르고 있다.

거리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소녀를 승현은 쉬지 않고 쫓아갔다. 섣불리 뛰지도, 속도를 올리지도 않는다. 그는 그녀를 멈추어 세워서 무언가를 할 만한 입장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그녀가 가는 곳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제 3자가, 아니 그 어떤 누가 보아도 스토킹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다.

추격자가 도망자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 괴상한 추격전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붉은 석양이 비추었던 것이 어느새 앞조차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 되어 버렸다. 소녀도 승현이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빠른 걸음을 유지하지도 않았다. 그저 천천히, 앞을 향해 또박또박 나아갔다. 그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 멈추어 섰다.

그리고 승현은 활짝 웃었다.

“당신은 저를 알고 있는 건가요?”

소녀의 목소리는 날카롭다. 그야 몇 시간 째 미행 내지 스토킹을 당하게 되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것이다. 오히려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려왔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아름답게 들렸다.

“대체 지금 무엇을 목적으로 저를 쫓는 거죠?”

승현은 저 소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어디에서 인상착의를 들었던 것도 아니다. 오늘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저 소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승현은 저 소녀를 끝까지 쫓았다.

“아아, 저는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이에요.”

승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저 소녀는 분명히 승현이 알지 못하는 소녀였다. 우선 승현은 저 소녀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승현의 친구의 가족이나 친구 중에서도 저런 소녀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또 승현의 부모님의 친구의 가족이나 친구 중에서도 저런 소녀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 외에도 승현이 파악하고 있는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의 가족 중에서도 저런 소녀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몇 단계의 케빈 베이컨 게임을 거쳐도 등장하지 않은 인물.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은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은 사람이 이 마을에 나타나는 것은 위화감이 있다.

그런 위화감에 가능성을 걸었고, 그 가능성에 승현 스스로의 확신을 걸었다.

저 소녀는 분명히―

“당신은, 마술사인가요?”

마술사일 것이라고.





“……결국 당신은, 마술사도 초능력자도 성법사도 아니란 겁니까?”


소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날카로움을 잃고 힘이 빠져 있었다. 승현은 ‘뭐, 그런 거지’라고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1시간 전까지 추격전을 펼치던 두 사람은 지금 어느 비즈니스호텔의 308호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상황이 건전한지 불건전한지는 둘째치고라도, 어째서 이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는 충분히 괴상하다.


승현은 원래부터 소녀가 멈춰주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마술사라면, 승현 쪽이 먼저 멈춰 세워 보았자 생전 처음 보는 마술이나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취한 선택은 공격권을 상대에게 쥐어주는 것.
승현은 기다리는 것에 능하다. 어떤 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그것에 도전할 수 있다. 아마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지 않을 정도로 매일 로또 복권을 사는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 요상한 추격의 끝은 당연히 소녀가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


리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젤은 마술사였기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 수 있다는 가능성쯤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른 사람’에 일반인은 절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리젤을 주시하는 자는 아무런 마력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술사나 초능력자나 이상이었다면 분명히 보였어야 할 그것을, 상대는 보이고 있지 않았다. 이름을 닫고 있는 마술사일 가능성은 있었다. 엄청나게 드문 경우가 되겠지만, 정체를 완벽하게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는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반대로 저쪽이 리젤을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름을 닫고 있는 마술사는 마술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는다. 마력을 지니지 않은 존재가 다른 마력을 감지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력 탐지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마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리젤은 마지막까지도 그가 일반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상대가 자신을 우연히 발견한 건지, 아니면 목적을 가지고 찾아낸 건지 판단할 수 없었기에 우선 자리를 피했다. 소년이 자신을 그대로 쫓아오는 것을 보고, 목적을 가지고 발견해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젤은 추격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술적인 역량도 알 수 없었고, 그의 목적 또한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상대가 이름을 닫고 있는 강대한 마술사라고 가정하였을 때 전투하게 되는 것은 심각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선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계속되는 추적에도 상대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를 쫓는다는 것은 충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행동이겠지만, 정말로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그녀의 뒤만 밟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정보를 캐기 위한 미행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행동과의 괴리가 생긴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승현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가 마술사라는 것에는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은 채.


“전 싸움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 뿐.”


승현은 격양된 상태였으나 목소리와 표정만큼은 차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대화 상대에게 흥분한 면을 보여서 좋을 것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좋아요.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도 아닐 테니, 움직이죠.”


리젤 또한 그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상대에게 발톱을 보이지 않았다.




(1)




“전 지금까지 마술사를 만나고 싶었거든요.”


마술사끼리의 대화를 예상한 리젤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마술사도 아닌 자가 마술사에게 내놓는 교섭 카드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 한마디로 리젤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는 대화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법사인가요? 아니, 아무래도 초능력자?”


“음, 역시 마술사. 대화의 시작부터 이야기를 못 알아듣겠네요.”


하지만 현실은 리젤의 안이한 생각마저 깨어버렸다.


“저는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어디까지나 마술사를 만나고 싶었던, 마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요.”


즐거운 듯 웃으며 말하는 승현과는 달리 소녀는 얼어붙었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경우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몇 초 동안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둘 모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리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해야만 했고, 승현은 능동적으로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웃기지도 않는 황당한 상황이야말로, 승현에게는 최고의 유흥이었다.
잠시 후 리젤은 팔을 뻗어 집게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세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니까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위협하는 리젤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넘겨버리는 승현. 리젤은 그대로 서있는 채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대체 일반인이, 마술사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


“제가 밖에 나가서 여기 ‘마술사가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승현은 여전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얼굴의 미소는 상당히 미묘해서, 기뻐 보이기도 했고 상대를 비웃는 것처럼도 보였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여유를 나타내는 듯싶기도 하였다. 그 미소가 어떤 진의를 품고 있든 간에, 상대가 보았을 때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 그런 유형의 미소이기도 했다.
너무나 태연하게 나오는 승현의 태도에 소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기분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상황이 웃겼는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거렸다. 그러면서 승현이 앉아 있는 탁자의 반대편에 자신도 의자를 빼서 앉았다.


“어머, 지금 마술사를 협박하시는 거예요? 저도 썩 경험 많은 마술사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그런 짓을 해봤자 이쪽이 잃을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인간 상식 외의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는 마술사가?”


리젤은 승현의 미소와는 다른, 상대를 아예 깔보는 미소를 지으며 탁자 위에 놓여있는 숟가락과 포크를 왼손에 쥐었다. 그리고 조용한 이 호텔의 객실에서나 들릴만한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변해라.”


만약 이 말 뒤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그냥 중얼거림에 불과했을 것이다. 원래 마술이라는 것은 이런 한마디로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숟가락과 포크는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고급 호텔의 은으로 된 식기는 어느새 짧은 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리젤은 단검을 거꾸로 고쳐 잡고, 왼손에 힘을 담아 탁자의 정중앙에 꽂아 넣었다.


이것이 리젤의 대답이었다. 마술사를 협박한다는 건방진 생각을 가진 남자에게, 마술사를 상대한다는 것이 어떤 일이 될지 보여준 것이다. 겁 없이 달려드는 멍청한 황소에게는 그 목숨을 빼앗을 검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리젤은 생각했다.


그러나 승현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띠었던 미소는 얼굴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시선은 꽂혀 있는 단검에 머물렀다. 리젤은 이 상황에서 저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하며, 쿡쿡 웃으며 그의 행동을 기다렸다. 몇 초 후에야 승현은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 같은 사람들이 소속된 조직이 있다고 하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야말로 지금 상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상한 가정. 리젤은 얼굴을 찌푸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리젤은 승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마술사들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알려지지 않는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조직이라는 거대 단체에서 ‘마술을 공개하지 말라’라는 지령을 내려버리면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마술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모순은 없습니다.”

“그래서요? 어차피 일반인 중에서도 더 이상 ‘마술’을 알지 못하는 자는 없지 않나요?”


안타깝게도, 바보 같은 세기의 대마술사들은 자기 멋대로 마술을 뻥뻥 쓰고 다녔다. 인간들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언제부터인가 이 ‘이상 현상’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동안 과거의 미신이라고만 생각되었던 ‘마술’에 대한 이야기가 재조명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 결정타로 어떤 마술사가 아예 방송에 나와서 마술의 존재를 증명해버렸다. 덕분에 ‘마술사 찾기’ 등 여러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으나 마술사란 존재가 워낙 흔적을 감추고 살다 보니 발견되는 경우는 없었고, 그냥 수상한 사람을 보게 되면 ‘저 사람 마술사 아니야?’라며 농담하는 정도로 전락했다.


“뭐, 그렇죠. 마술이라는 게 알려져 버린 이상, 마술사들은 자기 멋대로 마술을 쓰기는 힘들어졌을 겁니다.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더 이상 ‘이상 현상’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버렸으니까요. 뭐, 서론이 길었습니다.”


“…….”


리젤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지 않았다. 그 전처럼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지도 않았다. 읽히지 않겠다는 뜻을 가진 무표정한 감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승현에게 페이스가 넘어간 것이라고 깨닫지도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결론을 말하죠. 마술사는 일반인에게 마술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다시 방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리젤은 다음 수를 생각하고 승현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역시 리젤이 입을 열었다.


“서론이 완전히 틀렸어. 애초에 난 네가 말하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거든.”


“네?”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의 대답에 승현은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리젤의 말투가 반말이 되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물론, 방금 한 이야기 또한 처음 그녀가 마술사라는 것을 짐작한 것처럼 가능성을 보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승현은 방의 분위기를 읽으며 이야기했다. 리젤의 미묘한 표정 변화라던가 취하는 특정한 제스처, 몸의 자세 등을 모두 살폈던 것이다. 승현은 웬일로 분위기 읽기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며 자신이 가는 방향이 맞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젤도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 행동에 맞추어 주었을 뿐. 잘못된 시작을 이끌면 마치 길을 잘못 든 미로처럼 끝까지 헤매다가 벽에 막힐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결론은 맞았네. 난 일반인에게 마술을 사용할 수 없어. 축하드립니다.”


본래 잘못된 시작을 이끌면 결국 벽에 막혔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승현은 잘못된 시작을 했으나 벽을 뚫어버리기라도 했는지 목적지에 도달했다. 리젤이 잠시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은 이것 때문이다. 리젤은 몸을 뒤로 젖히며 두 손을 약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나타냈다.


“약간의 이야기만, 허락하지. 넌 오늘의 대화를 모두 잊고 살면 돼. 그런데 말이야, 애초에 어떻게 내가 마술사인 걸 알아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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