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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G의 이름
글쓴이: 소흔
작성일: 12-02-15 21:45 조회: 1,871 추천: 0 비추천: 0

Prologue. 나랑 같이

“저와 사귀어주십시오!”

나는 세상이 떠나가라 외쳤다. 기분 좋은 바람이 날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고백과 함께 고개를 숙인 내 심장이 그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언제라도 내 몸에서 떨어져나갈 듯이 쿵쾅거렸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

일상을 반복하던 내가 한 여자에게 반했다.

이것이 사랑!

이것이 청춘!

......하지만 언제까지고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불안해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 고백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평온해보였다. 그 모습이 날 더욱 애타게 했다.

이곳은 옥상. 우리는 학교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노을을 등진 그녀의 머리카락이 붉게 물든다. 추운 겨울, 이제는 금방이라도 밤 속에 숨어들 것 같은 노을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닮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보다도 붉었다. 외국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의 머리카락은 화려했고, 신비스러웠으며 이지적이었다. 그것은 염색한 것이 아니라 천연의 색깔이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그 붉은색에 매혹 당한 것이다.

“――나와 사귀자고?”

“......!”

그녀는 나의 외침이 잔향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정적만이 남을 무렵, 붉은 입술을 열어 그렇게 되물었다.

그녀는 도도하고 차분한 음성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반했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불러내 고백한 것이니까.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 고백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에는 관계없이, 내가 그녀에게 반한 것만은 분명 운명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단 한 번 봤을 뿐인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신께 기도하는 것뿐. 이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면!

그녀는 생긋 웃는 얼굴로, 날카롭고 매력적인 눈매를 가진 눈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안 돼.”

쿠궁.

즉답.

고등학교 2학년. 올해 열여덟.

사랑도 청춘도 날아갔다.

“요즘 시대에 편지 같은 걸 써서 불러낸 뒤에 고백이라니, 넌 타임머신이라도 탔니?”

쿠웅!

“게다가 난 널 지금 처음 보는데, 그렇게 다짜고짜 말해도 곤란할 뿐이고.”

쿠웅!

“키도 그저 그렇고, 교복 차림이라서 옷 입는 센스도 모르겠고,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덮여서 보이지도 않고.”

쿠구궁!

어느새 나는 땅을 손으로 짚은 채 절망하고 있었다.

이건......, 눈물?

신 따위 죽어버려라.

너도 같이 절망해라 빌어먹을.

“그리고 뭣보다―”

또 뭔가 남은 듯하다. 더 이상 들을 용기가 나지 않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려 했다.

너, 날 어떻게 볼 수 있지?

“……네?”

난 그녀의 영문 모를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려던 손을 내렸다. 눈도 번쩍 뜨였다.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날 어떻게 볼 수 있냐고.”

“네?”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되물은 거라서, 똑같이 말하면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

“동류(同類)? 아냐. 그런 기색은 없는데. 길잡이?”

“네?”

“사냥꾼? 그럼 방금 얼토당토않은 고백은 연기? 하지만 루핀이 무기도 없이 뭘 어떡하려고?”

“네?”

분명 우리나라 말 같은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것이 얼마 전 뉴스에서 나온 이웃 간의 단절이라는 건가?

그녀는 내 표정을 잠시 동안 주시했다. 혹여나 무언가 숨기고 있는지 않을지 찾아내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상황 자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게 그런 눈빛을 보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곧 의심을 거두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너, 정말로 그냥, 보통의 인간?”

“아, 인간이라면 다 보통인 거라면, 전 보통이죠, 네.”

그녀는 내 대답에 흐응, 하고는 시선을 옮겼다. 의심을 완전히 거두진 않은 눈초리였지만, 내 말을 대충은 납득한 것 같았다.

내가 뭘 납득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결국 해야 할 운명이라는 건가…….”

그러고는 무언가를 마음속으로 정한 듯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나를 쳐다본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너, 나랑 사귀고 싶다고 했지?”

“아, 네.”

무심코 대답한 나.

“한 가지만 들어주면, 사귀어줄 수 있는데.”

어? 정말?

이라고 무심코 생각한 나.

“들어줄래?”

“그, 그러죠.”

라고, 무심코 대답해버린 나.

내 대답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럼 말야――”

――나랑 같이, 죽어줘.

“……네?”

무심코, 죽을 위기에 처한 나.

제1장

1

따르르릉!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돌연 그렇게 외치면서, 나는 깨어났다.

시끄럽게 울고 있던 자명종도 반사적으로 후려갈겼다.

완벽해.

완벽한 아침이다.

“어라?”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시야가 조금 흐릿했다. 나는 고개를 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충 둘러본 것만으로도 여기가 어딘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방이다.

분명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숙제를 한 뒤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을 것이 뻔하니까, 여기가 내 방이라는 점이 이상한 건 아니다.

“……아냐, 이상한걸.”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뭐가 이상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랑 같이 죽어줘.

으음……. 뭔가 중요했던 것 같은 일을 잊은 것 같다.

“앗, 지금은 그런 것보다 등교 준비를 해야지.”

원래 아침엔 그리 약한 편이 아니라 난 고개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

그리고 무심코, 거울을 본다.

비춰지는 나의 얼굴, 여느 때처럼 상의를 벗은 몸, 그리고......, 흉터.

내 왼쪽 가슴엔 커다란 흉터가 있다. 여러 갈래로 퍼져있지만, 눈에 띄는 건 어깻죽지부터 갈비뼈 근처까지 내려온 긴 세로줄. 아무런 고통도 없어서 보통은 잊고 살지만, 피부보다 내 몸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섬뜩하게 한다.

물론 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상처는 아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이상 여의치 않게 들킬 때가 있고, 특히 체육 시간이 되면 숨기기는 만만치 않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클래스 안의 남자 녀석들은 전부 알게 된다는 얘기다.

이 흉터를 본 친구들은 대개,

“이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살아나다니, 운이 좋구나, 너.”

라고 말한다. 그 때마다 난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글쎄.

이 흉터는 운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면 심장을 비껴나갔느니, 상처가 깊지 않았다느니 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직격’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그대 가슴에 피융―!’이라는 얘기.

아니, 여기선 푸슉.

“......뭐, 내가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들은 이야기지만."

상념을 거둔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슬슬 나서지 않으면 주성이 녀석이 멋대로 방 안에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

거실에 들어서면서 태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이미 식탁에 앉아 나와 주성이를 기다리고 계셨다.

조금 마른 몸매에 안경을 써 날카롭고 이지적인 인상, 과묵해 보이는 다문 입술. 40대 후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젊은 외모. 거기다 대학 병원의 자리 하나를 잡고 있는 실력 있는 의사다.

주성이가 롤모델을 자기 아버지로 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런 아버지라면 나라도 목표로 삼고 싶겠지.

단지,

“으아악! 아버지! 식사준비는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쿵쾅거리고 계단을 뛰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주성이의 외침이 가까워온다. 아마 방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미스테리한(?) 음식 냄새를 맡은 거겠지.

뭐가 미스테리냐면, 이것이 과연 음식의 냄새인가? 하는 미스테리.

계단에서 주성이가 모습을 비춘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시원시원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나처럼 교복을 입고 있지만 균형 잡힌 몸매는 옷 위에서도 알 수 있다. 아버지를 따라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다. 아마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도 이 녀석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제법 있겠지.

다만 천성인지, 나와 닮은 기분파인 그 성격은 아버지와 굉장히 대조된다.

“음, 요리책을 읽다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면 시험만 하라구요! 실험하려 들지 말고!”

오오, 좋은 지적이다.

“그런 말하지 말고 먹어봐라. 냄새는 이래도 맛은 어떨지 모르잖느냐.”

――아니, 알 수 있다.

보기엔 이래도 맛은 어떨지 모른다, 라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얘기다. 냄새는 나쁘지만 맛은 좋다, 는 음식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맛이 강한가 약한가, 맛의 종류 등은 미각으로 느끼지만, 음식의 구별이나, 맛의 좋음과 나쁨은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젠장......, 텁.”

그래도 아들이라고 꾹 참고 한입 먹어보는 나의 벗 김주성. 저건......, 오이소박이? 잘 모르겠다.

“......?”

그리고 주성이 머리 위에 떠오르는 물음표. 저게 두 번째 미스테리다. 이것이 과연 음식의 맛인가? 하는 미스테리.

분명 오이소박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씹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치 삶은 감자라도 먹고 있는 거 같다.

초록빛 나는 감자? 오이인 줄 알았더니 콱, 하고 으깨지는 감촉은 또 제법.......

“......이건, 오이맛 나는 감자.......”

――미안, 내가 네 아버지를 얕봤다.

라고 생각한 순간, 아저씨가 한 마디 했다.

“아니, 그거 오이 맞다.”

“아저씨는 마법사입니까?”

식사 중, 돌연 태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진우야, 방과 후에 병원으로 오너라.”

“에의 그 일인가요?”

내가 되묻자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 주성이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다.

“진우를 너무 일에 끌어들이는 거 아닌가요? 아직 학생이라구요.”

“그것도 있지만, 진우의 몸 상태를 다시 점검해야겠다. 저번에 검사한 뒤로 시간이 꽤 흘렀으니.”

아저씨의 말에 난 왼쪽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딱히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확인할 뿐. 아주 느리게 뛰는, 내 심장을.

“그러고 보니 진우 너, 어제 어디 갔었어?”

“응?”

“응? 이 아냐. 급한 일이 있다면서 방과 후에 먼저 사라졌잖아. 딴 녀석 말로는 옥상에 올라갔다고 하던데.”

――옥상?

그야 난 그 날 옥상에 볼일이 있었고, 방과 후에 서로 만나기로 한 일방적인 약속을 잡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붉은 머리의 여자를――

“......아니, 딱히 옥상에 가진 않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어제는 아마, 참고서라도 사려고 서점에 들렀던 거겠지.

“흐음, 그래?”

주성은 내 말을 딱히 의심하지 않고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도, 내 말을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다.

2

“아.”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의 그녀.

그녀는 복도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날 지나쳤고,

난 스쳐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

음?

“뭐하냐 너?”

주성은 날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어깨를 툭 쳤다.

“뭐하냐니, 아는 사람이 보이길래 그냥.......”

쳐다본 것뿐이지만.

근데 난 왜 쳐다보기만 했을까?

하지만 주성은 내 말에 더욱 의구심이 커진 듯 말했다.

“아는 사람이라니. 아무도 안 지나갔잖아?”

“어라, 그럴 리가――”

난 그녀를 가리키기 위해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복도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라?”

“뭐야, 아직 꿈에 발목 걸치고 있냐. 아침에 강한 강진우치곤 신선한 모습이군.”

“어라?”

“자, 곧 선생님 오신다. 들어가자구.”

“어라――?”

오전 수업이 끝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평소처럼 주성이 녀석과 함께 학생식당이라도 가야지 생각했는데, 교실에서 여자애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어? 선아 얘 어디로 갔지?”

“아까 옥상으로 올라가던데?”

“옥상? 혼자? 걔 도시락 같은 거 싸왔던가?”

“글쎄. 불러도 아무 대답 없길래 그냥 내버려뒀는데. 다른 반 애들이랑 밥 먹으려나보지.”

――옥상, 이라.

왠지 최근에 가본 적이 있었던 듯한, 없던 듯한.

“휴우, 배고프구만. 진우야, 가자.”

주성이가 날 부른다.

난 잠시 교실 천장을 올려보다가 녀석에게 말했다.

“미안, 먼저 가라. 갑자기 볼 일이 생각났어.”

“엥? 어디 가는데?”

녀석이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않고 교실을 나섰다.

선아는 우리 학교에서 얼마 없는 미모의 여학생 중 한명이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말을 나누는 유일한 여학생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뉘앙스가 이상하지만, 결코 내가 지나치게 못생겼다거나 더럽다거나 해서 여자들이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다.

학교에는 이렇게 눈에 안 띄는 녀석들이 한 명 쯤은 존재하고, 그 한 명이 나인 것이다.

거기다 나는 ‘상처’ 때문에 여자아이들을 조금은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선아는 드물게도 나와 친한 여자애지만, 딱히 선아에게 볼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선아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지금 선아가 있을 장소다.

――옥상.

난 이유도 모른 채 습관처럼 옥상을 향해 걷고 있었다.

끼익―

옥상으로 올라가는 녹슨 철문을 열자 날카로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난 바람이 멈추길 기다린 뒤 흩어진 앞머리를 매만져 다시 눈을 가렸다.

그래서일까, 머릿속도 돌연 냉정해졌다.

아니 냉정함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 말하자면, 긴장감.

머릿속이 팽팽한 고무줄에 조여진 듯한 기분.

“......어이, 이선아. 있냐?”

찾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러본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찾는다면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부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런 개미만한 목소리로 사람을 찾다니, 어지간히 정신이 나갔다.

“.......”

우선, 지금 보이는 시야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옥상에는 옥탑방이 하나 있다. 오른편은 그 건물에 의해 가려져있다.

그곳을 봐야 한다.

어째서일까, 나는 꺾는 바로 앞에서 멈춰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도청이라도 하듯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

그곳에는, 두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둘은 마주 보고 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그건 오랜 친구 같은 모습으로도 보이고, 더 나아가자면 연인처럼도 보였다.

‘뭐지, 이건.......’

한 명은 알고 있다. 쇼트컷에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미소녀. 아까부터 찾고 있던, 이선아다.

하지만 지금 선아의 모습은 조금 이상해보였다. 취한 듯, 넋이 나간 듯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은 조금 허공을 맴돌고 있다.

저 맞잡고 있는 손을 놓으면 그대로 쓰러져 잘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

그리고 또 한 명은――

――그럼 말야.

‘아.’

노을에 물든 것이라 착각했던, 붉은 머리칼.

나랑 같이――

“이선아!”

그 때 나는 머릿속에서 삭제되었던 기억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끌어들이고,

그와 함께 나도 모르게 선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둘은 놀란 듯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다. 다급해진 붉은 머리의 여자가 선아를 옥상 난간을 향해 밀쳐낸다―!

“큭......!”

다리에 힘을 줄 준비도 못하고 내달린다. 거리는 약 10m. 선아가 난간으로 떨어지기까지 1.5초.

1.5초 만에 10m를 주파해 떨어지려는 인간을 잡아낸다.

‘무리.’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

‘무리다.’

내 앞을 가로막아서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상체를 비트는 것만으로 피해내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떨어지는 선아를 향해 뛰어들어 단번에―!

‘인간으로선 결코......!’

――거절하겠어. 나도 죽긴 싫고, 너도 죽게 놔두진 않아.

콰악!

“.......”

――분명한, 손의 감촉을 느꼈다.

날 바라보는 커다란 눈망울. 겹치는 서로의 호흡. 중력을 느끼는 오른팔.

얼굴에 배어나온 식은땀을 차가운 바람이 날려 보낸다.

그제야, 난 한숨처럼 내뱉었다.

“......잡았다.”

모습은 꼴사납지만, 분명히 잡았다.

“조금만 기다려. 끌어올려 줄테니까.”

아마 조금만 침착했다면 고등학생이 된 뒤로 처음 잡아보는 여자의 손이라는 걸 알아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

그런데, 끌어올리는 와중에도 선아는 얼어붙은 표정 그대로였다. 아직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

내가 그렇게 순간, 그녀는 말했다.

“뒤.......”

“뭐?”

콱!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혔다. 마치 기도가 서로 달라붙은 듯한 섬뜩한 감각. 뒷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 압도적인 힘. 그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

“너, 뭐야?”

살기 어리다 못해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듯한 섬뜩한 어조로, 그녀는 말했다.

3

“뭔데 방해를 해? 네가 대신 처리 당할래?”

그녀는 말하면서도 목을 조이는 힘을 강하게 했다.

위험.

위험하다.

한 치 끝만 잘못하면 확실히 다가올 죽음.

돌연 내게 닥친 무자비한 현실이 멀게 느껴지면서도, 너무나도 가깝다.

죽음 바로 앞에 코끝이 닿아있다. 죽음의 냄새가 난다. 죽음이 보인다.

무취보다 더욱 희미한 냄새, 무색보다 더욱 투명한 존재.

――그래, 본 적이 있다. 맡아본 적이 있다.

아마 이젠, 너무 오래된 이야기.......

꽈악!

“읏......!”

선아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아마 나에게 잡힌 왼손이 아팠던 것이겠지.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난 지금 말도 안 되는 힘으로 선아의 손을 쥐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올린다.

“――그래, 이대로 죽어.”

내 목을 붙잡은 손의 주인이 고한다.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가 손톱이 되어 내 목을 파고든다.

“......윽......, 아――!”

조여진 숨이 삐걱대면서 흘러나온다.

제길, 어차피 죽는다면 적어도 그 전에 선아를 끌어올리는 것 정도는――!

“헛수고야.”

우득, 하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크게 울렸다. 여자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고, 목을 타고 흐르는 나의 피가, 선아의 얼굴 위로 뚝......, 뚝......!

헛수고, 라고 하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배어있었다. 설령 내가 선아를 끌어올려준다고 해도 그녀는 날 죽인 뒤에 그녀도 죽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헛수고. 온 힘을 다해 선아의 손을 붙잡은 것은 그렇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고.

――그래도 상관없다.

가능성이 있다면 그곳에 거는 게 당연하다.

나의 목숨을 버리고, 그 모든 의지를 선아에게 향한다면 분명.......

왜 그렇게 죽는다는 말을 쉽게 하지? 그 말은 거절하겠어. 난 죽기 싫고, 너도 그렇게 놔두진 않아.

......아아 그래, 그랬다.

난 내 고백을 거절한 그녀에게 목숨을 버리겠다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바보 같고 서툰 고백을 했던 어느 소년은 자신을 붙잡고 뛰어내리려던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살아야한다.

내 소유의 목숨은 왼쪽 가슴이 뚫린 뒤로 이미 사라졌다.

녀석에게 죽어도 된다고 허락받기 전까지 나는――!

“크......, 으아아아아악!”

몸 안에 숨을 전부 외침으로 토해내면서 선아를 잡아당긴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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